크리스천 이야기-31

2021-12-14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이사야

 

유다 왕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사야의 활동은 매우 컸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B.C. 739,『이사야』6:1))에, 이미 앗수르의 멸망(B.C. 722)과 바벨론의 멸망(B.C. 539)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B.C. 4)을 예언하였다.

●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멸하시리라”(사 12:1)

●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사 13:19)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몰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700여 년 전에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하여 주셨음을 의미한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 이후에도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에 이르는 때에 선지자 임무를 감당하였다. 이사야는 유다가 앗수르와 서로 동맹하는 행위를 신랄하게 경고하며 반대하였다. 그것은 후에 앗수르가 강해져서 이스라엘이 위험해 질 것을 감지한 경고였다. 또 그는 히스기야 때에는 이전과는 반대로 유다가 앗수르를 항거하기 위하여 애굽과 동맹하는 행위를 적극 반대하였다(사 30:1-7, 3:1-3). 당시 애굽은 쇠퇴해 가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애굽은 예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배하던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후에 앗수르가 강해졌고, 바벨론이 새롭게 일어나 앗수르를 무너뜨렸고, 바벨론은 메데·파사 연합군에 의해 무너져 페르시아가 많은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외교를 잘 해야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애굽과 동맹을 맺을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군기고의 모든 군기와 보물을 공개하여 보이며 그의 부강함을 자랑하였다(왕하 20:16-18). 이는 바벨론이 강력한 군대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후에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유다가 멸망한 후 유대인들은 바벨론, 헬라제국,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이는 세상 나라들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하나님의 의대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