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선구자

2021-12-09

이태리 로마, 지사장한평우목사

 

개혁의 선구자

      왈도(1)


1868년, 독일은 종교 개혁의 선각자들의 동상을 보름스에 세웠다.

말틴 루터가 교황청의 요구에 자신을 변증해야했던 바로 그 자리에,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되어 준 신앙의 지도자들을 기리기 위함이다. 중앙에 루터를 위시하여 왈도, 얀후스, 사보나롤라, 헤센의 영주 필립백작, 그리고 멜랑히톤의 형상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선배가 바로 불란서 리옹 출신의 성도 왈도((Peter Waldo,1140-1217)이다.


세상역사는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자들이 늘 존재했다. 그들 중에는 철학자나 사상가, 또는 정치가나 종교인들이 있다.

특히 피에몬트(Piemont)의 알프스 산자락에는 왈도의 후예들이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흔적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들은 1163년에 새로 부임한 감독 캔터베리 요한에 의해 리용에서 쫓겨나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의 깊은 골짜기로 찾아들었다. 핍박을 피해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해서였다.

후에 이들의 일부는 영국으로 건너갔고, 청교도의 무리와 함께 미국까지 갔고, 독립선언서에 사인을 한 사람도 있다.


왈도는 불란서 리용에서 장사로 큰 성공을 하여, 부요했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이 있었다. 결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속사람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혀 걱정 없고 행복할 것 같은 데, 헐떡이고 허전해하는 인생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그 허전함을 해결 하는 방법으로 술이나 이성에 탐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허전함은 더 큰 갈증으로 상승할 뿐이다.


왈도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가 성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언어에 재능 있는 수사를 고용하여 라틴어로 된 성경을 불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당시는 라틴어로 된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교황청에서 금한 일이었고, 발각되면 화형을 당하는 두려운 일이었다. 당시의 성경은 라틴어로만 쓰였고 강론도 라틴어로 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라틴어가 사라진 것은 13세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라틴어만을 고집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롬10:17),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등불 없이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방불한 일이다.

사실 자국어로 된 성서를 지니게 된 것은 그 후 760년이 지난, 2차 바티칸 공회 (1962-65)에서 비로소 실현 되었기 때문이다.


왈도는 비로소 자국어로 번역된 복음서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구하듯 헐떡이며 복음서를 읽어나가던 중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온 부자 청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했다.

물질은 곧 힘인데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택하는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 청년은 한손에 세상의 힘인 재물, 또 한손에는 영생을 붙잡고 싶었는데 말이다.

세상에서 영화를 맘껏 누리고, 천국도 들어가고 싶은 바램이야 말로 모든 이의 로망이다. 고로 부자 청년은 주님의 말씀을 결코 순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왈도는 달랐다.

그는 즉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쫓았다.

그것은 성령의 은혜였다. 자신의 부요함을 포기하고 주님을 좇았던 자들 가운데 교회사 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는데, 왈도와 베네딕토, 성 프랜시스, 불란서의 클레르보 베르나르, 등등이 있다. 이 외도 많겠지만---


진리를 순종하기 위한 놀라운 결단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보다 뛰어난 믿음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왈도의 행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왈도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단순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것은 당시의 신부나 수사들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전도자로 훈련시켰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말씀대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전도자로 파송했다. 70인 전도자를 파송하신 것처럼---


저들은 신부나 수사들이 외면하는 시골이나 골짜기의 외딴 집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전도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의미했다. 신학적 소양이나 배움도 변변치 못한 자들의 단순한 전도인데 말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표징이었다.

그는 개혁을 목표하거나 설계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의 씨앗이 되도록 섭리하셨다.

그러나 그 일은 기성 교회의 지도자들에 큰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위사진- 왈도파성도들이 피에몬테의 계곡에서 숨어 예배드렸던 동굴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