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父傳子傳)

2022-06-21

정신재(시인․문학평론가)


부전자전(父傳子傳)


어려서부터 ‘버꾸(바보)’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건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것이 원인일 수 있었다. 초등 학생 때부터 부모님의 심부름은 물론, 위로 누나 넷과 형 둘의 심부름을 하느라 엄청 바빴다. 나는 형제들로부터 더 이상 버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청년이 되자 여기저기서 맞선이 들어왔다. 상대는 H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경아였다. 썩 미인은 아니었으나, 2세만은 ‘버꾸’ 소리를 듣지 않는 아이를 낳고 싶었다. 우둔한 나를 닮지 않은 영리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를 소망하였다. 단란한 신혼 생활 끝에 건강한 2세가 나왔다. 그러나 아이가 영리하지 않은 것 같았다. 키가 아이보다 훨씬 작은애한테 아이가 맞고 들어올 때에는 “이건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매사에 배움이 더딘 것이 어렸을 적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영리한 경아한테서 영리하지 않은 아이가 나온 것을 생각하니, 맞선을 보기 전에 사귀었던 순이가 생각났다. 순이는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가도 될 만큼 몸매도 날씬하고 얼굴도 미모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예쁜 순이와 결혼할 걸 그랬나?’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근데 아이는 하교 때에 통학 차를 타지 않고 십 리가 넘는 시골길을 걸어서 집에 왔다. 그건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기에 부부가 함께 담임 선생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이십 대의 여선생은 아이가 산수도 제대로 못 풀고 악보도 볼 줄 몰라 한 시간씩 공부를 더하고 가라고 했다 한다. 숙제장을 한 번 보라고 했다. 글씨가 삐뚤빼뚤 엉망이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공책에 ‘아버지’란 글씨를 쓰는 데 교실 뒤에서 지켜 보고 있던 큰누나가 와서 “너도 옆의 아이들처럼 글씨를 또박또박 써라”며 면박을 주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의 담임 선생에게 말했다. “저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글씨를 삐툴빼툴하게 썼어요.”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그럼 아이에게 희망이 있네요. 그랬던 아빠가 문학박사가 되셨으니…”. 야 이거, 병 주고 약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