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오 빌라도에 대하여

전종문 목사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한 본디오 빌라도의 행동에 대하여 두둔하려 드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기득권자들이 고발한 예수를 심문한 결과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눅 23:4,14) 그랬음에도 법과 양심을 어기고 사형 판결을 내렸으니 어둠의 권세자들 외에 어느 누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 기득권자들의 고소를 접수한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법의 나라인 로마인답게 사건을 정확히 이해했다. 기득권자들의 시기가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이려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그는 정확히 간파한 한 것이었다.(마 27:18)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양심의 기능이 살아있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에서 발을 빼고 싶어 당시에 예수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헤롯에게 이 사건을 이첩하려는 생각도 했고(눅 23:15) 고소한 기득권자들에게 너희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한도에서 매나 조금 때려서 내보내자고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타협도 결렬이 되자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따라 그를 석방시키려 했다.(마 27:15) 그래서 당시 로마 제국에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 즉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까지 하여 체포된 바라바를 예수와 함께 내세웠다. 둘 중의 한 명을 사면하자고 하면 군중들은 당연히 죄가 없는 예수를 사면해야 한다고 판단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빌라도의 의중은 빗나갔다. 기득권자들의 선동에 놀아난 군중들은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군중심리에 편승된 저들은 극악한 죄수인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이렇게 되니 이성을 잃은 사람은 군중들만이 아니었다. 이 중요한 판결을 앞둔 빌라도도 자기의 권한과 본분을 포기하고 오히려 군중들에게 “그러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고 물었고(막 15:12)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다. 세상에 법과 양심을 가지고 판결해야 할 사람이 성난 군중에게 물어서 판단한다면 말이 되는가. 그는 군중의 소요에 굴복했던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이지만 법과 양심에 의해서 희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소요를 막지 못하여 돌아오는 로마 정부로부터 오는 책망 사이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로마 정부의 책망은 곧 자신의 정치적 생명의 종지부가 아닌가. 그는 결국 법과 양심을 포기하고 군중의 외침대로 십자가형을 판결했다. 기득권자들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한 사람 예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무능한 권세자 앞에서 정의가 광란과 난동 그리고 군중심리에 굴복했다.
이런 현상을 기득권자들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다수결원칙의 승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민심이 천심이라고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심이 천심이 아닐 경우가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맹점이다. 왜 예수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했을까?(마 6:10) 민심이 천심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민심은 천심을 찾아 따라야 할 것을 가르친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지금까지 빌라도의 판결을 부당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여전히 군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쥐고자 하는 무리들이 후안무치하게 현실 정치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데 있다. 양심 기능이 마비된 저들은 법을 무시하고 온갖 포퓰리즘을 동원하여 얄팍한 정신을 가진 군중들을 선동한다. 그러면 선동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오직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악을 조장하는 무리들의 앞잡이가 된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장수처럼 외치는 비극이 아닌 희극의 연출자가 된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있다. 희극이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비극이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 그것은 소요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한 사람 쯤은 억울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본디오 빌라도에 대하여
전종문 목사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한 본디오 빌라도의 행동에 대하여 두둔하려 드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기득권자들이 고발한 예수를 심문한 결과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눅 23:4,14) 그랬음에도 법과 양심을 어기고 사형 판결을 내렸으니 어둠의 권세자들 외에 어느 누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 기득권자들의 고소를 접수한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법의 나라인 로마인답게 사건을 정확히 이해했다. 기득권자들의 시기가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이려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그는 정확히 간파한 한 것이었다.(마 27:18)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양심의 기능이 살아있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에서 발을 빼고 싶어 당시에 예수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헤롯에게 이 사건을 이첩하려는 생각도 했고(눅 23:15) 고소한 기득권자들에게 너희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한도에서 매나 조금 때려서 내보내자고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타협도 결렬이 되자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따라 그를 석방시키려 했다.(마 27:15) 그래서 당시 로마 제국에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 즉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까지 하여 체포된 바라바를 예수와 함께 내세웠다. 둘 중의 한 명을 사면하자고 하면 군중들은 당연히 죄가 없는 예수를 사면해야 한다고 판단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빌라도의 의중은 빗나갔다. 기득권자들의 선동에 놀아난 군중들은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군중심리에 편승된 저들은 극악한 죄수인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이렇게 되니 이성을 잃은 사람은 군중들만이 아니었다. 이 중요한 판결을 앞둔 빌라도도 자기의 권한과 본분을 포기하고 오히려 군중들에게 “그러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고 물었고(막 15:12)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다. 세상에 법과 양심을 가지고 판결해야 할 사람이 성난 군중에게 물어서 판단한다면 말이 되는가. 그는 군중의 소요에 굴복했던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이지만 법과 양심에 의해서 희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소요를 막지 못하여 돌아오는 로마 정부로부터 오는 책망 사이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로마 정부의 책망은 곧 자신의 정치적 생명의 종지부가 아닌가. 그는 결국 법과 양심을 포기하고 군중의 외침대로 십자가형을 판결했다. 기득권자들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한 사람 예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무능한 권세자 앞에서 정의가 광란과 난동 그리고 군중심리에 굴복했다.
이런 현상을 기득권자들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다수결원칙의 승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민심이 천심이라고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심이 천심이 아닐 경우가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맹점이다. 왜 예수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했을까?(마 6:10) 민심이 천심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민심은 천심을 찾아 따라야 할 것을 가르친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지금까지 빌라도의 판결을 부당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여전히 군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쥐고자 하는 무리들이 후안무치하게 현실 정치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데 있다. 양심 기능이 마비된 저들은 법을 무시하고 온갖 포퓰리즘을 동원하여 얄팍한 정신을 가진 군중들을 선동한다. 그러면 선동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오직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악을 조장하는 무리들의 앞잡이가 된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장수처럼 외치는 비극이 아닌 희극의 연출자가 된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있다. 희극이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비극이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 그것은 소요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한 사람 쯤은 억울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