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도선교 어제와 오늘 & 내일의 소망

인도 선교 동 역자 고 해성


 나의 인도선교 어제와 오늘 & 내일의 소망

1. 어제

 

본인은 젊은 시절 인도의 역사와 문화 그 종교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늘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헛된 신으로 가득한 그 곳에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자하는 꿈을 꾸기도 했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젊은 날의 꿈은 희미해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 퇴색해 가던 그 꿈을 문득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게 했지요. 그 때 제 나이는 오십을 훨씬 넘어 있었습니다. 知天命의 나이, 저는 그 때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듣게 됐습니다. 기도하던 중 마케도니아인의 부름을 받았던 바울처럼, 인도인의 부르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가난과 질병, 우상과 미신, 계급간의 멸시와 반목이 가득한 인도에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뜨거운 마음이 모든 두려움을 없애 주었지요. 그 시절을 돌아보니 꿈을 잃어갈 나이에 새로운 큰 꿈으로 이끄신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교분을 쌓고 있던 인도 유학생 Grace을 통해 인도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고, 인도 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지요. 가진 것 없으나 구하는 자, 찾는 자,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겠다 말씀하신 주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로부터 인도 선교를 위한 후원회 모임을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름 하여 ‘인도 선교 협력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초대회장 유경손, 2대 오봉서, 3대 김종택) 마침내 1992년 군목 5년을 제한 30여 년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기장 총회의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인도 당국의 선교사 비자 불허라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지만 천신만고 끝에 비자를 받아 인도선교의 꿈을 안고 하늘을 날게 되었지요. 인도 뉴델리에 도착하여 인도 정부의 고위 관리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L.B. Sinate의 집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첫 만남 또한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시나테 형제는 지금까지 저의 훌륭한 선교 동역자로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동북부와 첸나이 도마 순교지를 돌아 뉴델리 시나테 형제의 소개로 그의 처남댁 Lalrowthang의 조그마한 방 하나를 얻어 그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방은 천정에 매달린 조그만 선풍기가 유일한 냉방 시설이었는데, 그것으로 살인적인 델리의 여름을 견디기란 참으로 어려웠지요. 그러나 폭염 중에도 주님의 사랑을 인도인들과 나누고 싶은 열망이 제게 강한 힘을 주었습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 기도해 주는 아내와 성도들의 사랑 또한 큰 힘과 위로가 되었지요.

 

인도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힌디어 그 이외 여럿이 있으나 다민족 국가인 인도에서 선교를 위해선 영어 뿐 아니라 힌디어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국립 힌디어학원인 산 서 탄에 등록하였고, 이를 통해 학생 신분으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누면서 간구하게 된 기도 제목은 어려운 이웃을 영육으로 돌볼 수 있는 시설의 설립이었습니다. 매 주일 시 나 테 형제의 집에서 시작된 말 종족 예배에 참석하면서 교회와 봉사관의 필요를 놓고 중보의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기적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신암 교회(담임목사 김성호 목사)와 초동교회(담임목사 신익호 목사)가 돕겠다고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일찍 남인도에 와 사역하고 계시던 김영자 선교사님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한 후 시나테 형제와 구체적인 의논을 했습니다. 결국 그가 속해있는 교단 I.C.I.(Independent church of India) 명의로 대지를 구입하기에 이르렀고, 많은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오늘의 베데스다 선교 센터가 개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 개관 당시엔 설계도면과 건축현장의 차질이 있어 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신암 교회 출신이며 U. B. M.에서 파송한 유 동윤, 알렉산더 두 선교사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지요. 두 분의 협력으로 못 다 이룬 3층 증축공사를 완공하게 되었고, 2007년 4월 7일에 감격적인 봉헌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설립된 선교센터가 비록 본인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교회와 신학대학(E. Stanley Jones College ), 어린이집(Spring Children Home), 진료실, 세미나실, 친교실, 도서실, 기숙사, 손님방 등이 마련되어 많은 교회 단체들이 이용하고 있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홍콩에 계시던 조성호 장로님과 김상숙 권사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분이 인도를 방문차 오셨을 때 기적적으로 만나 시비할 기도처로 안내했었는데, 좁은 골방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시고 양계장을 사 학교와 교회를 세워 이후 수많은 힌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은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라 믿습니다. 지금도 많은 열매를 맺고 있어 두 분을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오늘

 

1993년 인도 선교사로 파송된 이래 실시하고 있는 사역들은 ICI교단과의 선교 협력을 통한 뉴델리 소재 사회 봉사관(BSSC), 김상숙 권사님의 후원으로 설립된 베다니 학교, 예수님을 위한 방(Room for Jesus)... 운영 등입니다. 예수님의 사역(Preaching, Teaching, Healing →P.T.H.)을 계승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미약한 상태이지만, 영육으로 헐벗고 굶주린 인도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주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더욱 확장되어 가기를 소망하며 힘쓰고 있습니다.

 

3. 내일

 

오래 전부터 Retreat Mission Center에 대한 꿈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 Tripura Darlchwoi 마을에 1만평 가까운 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현재 이 땅을 개간해 가꾸며, 이 곳을 뿌리로 해서 전 인도의 다양한 종족 대상 선교 활동을 보다 넓혀갈 꿈을 꾸며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본인이 현지에 직접 방문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현재는 인도 선교 협력회를 통해 힘닿는 대로 돕고 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시간까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다 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의 기도와 후원에 감사드리며, 아무쪼록 성탄과 새해를 맞아 평강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百聞이 不如一見이라, 현지를 직접 방문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2021년 저무는 날에

인도선교협력회 고해성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