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도박사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련의 확률적 사건들에서 상관관계를 찾아내려는 사고의 오류, 즉 서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착각에서 기인한 논리적 오류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정기적 개연성에 대한 원리의 의미를 오해하여 미래를 잘못 예측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도박에서 줄곧 잃기만 하던 사람이 이번엔 꼭 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앞에 일어난 사건과 그 뒤에 일어난 사건이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마치 연관성이 있다고 받아드리는 심리적 오류인 것이다. 몇 해 전 한 TV에서 딸 부잣집으로 불리는 가정의 부부와 일곱 명의 딸이 등장해 재미있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프로그램 중간에 사회자가 “어쩌다 딸만 일곱을 낳게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딸을 셋 낳으니까 사람들이 ‘딸 셋을 잇달아 낳으면 다음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하기에 낳았더니 또 딸이데요. 그런데 딸 여섯을 낳으니까 ‘다음엔 정말로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하기에 또 낳았더니 딸이었어요.” 이 대답 속에는 간단히 웃어넘길 수 없는 확률적 오류가 숨어 있다. 잇따라 딸을 다섯 낳았거나 아들을 다섯 낳았더라도 다음에 다시 아들을 낳을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딸을 셋 잇따라 낳으면 다음에 아들을 낳을 확률이 2분의 1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을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맹자(孟子)는 “공손추상편(公孫丑上篇)”에서 ‘오습거하(惡濕居下)’라는 비유를 들어 판단의 오류를 경계한다. 습기(濕氣)를 싫어하면 위의 마른 곳에 거처해야 하는데 거꾸로 아래의 습지(濕地)에 산다는 것이다. 남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 싫다고 하면서도 그 일을 벗어나지 못함을 뜻한다. 판단과 습관의 오류 때문이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리만큼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가고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서 현기증을 느낄 때가 많다. 가뜩이나 자동화로 인해 빨라진 변화가 코로나로 인해 더 빨라져 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생각도 달라지고 가치도 변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인 취미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이 지금껏 진리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째 공론화 단계에 머물렀던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은 코로나 19 사태 이후 거의 현행화 단계 즉 일상 속으로 녹아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을 바탕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을 주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제도가 다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은 도박사의 오류에 불과하다. 공산주의가 무산대중의 유토피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판단이요 과오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리에서 기인되는 착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행심리나 우연성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더 커지면서 그렇듯 공고하던 기존의 가치관이 시대의 변화를 만나 지진을 맞은 건물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가치관이나 신앙관이 흔들리는 현상을 가치관 또는 신앙관의 액상화(液狀化)라 한다. 리차드 바크의 청소년소설『갈매기의 꿈』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이상의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는 것을 사랑했다.” 조나단 리빙스턴이 나는 것은 가능해도 다른 갈매기들은 날 수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분명 틀린 생각이다. 조나단 리빙스턴이나 다른 갈매기들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꼭 같다. 꿈과 추구하는 취향이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가치관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변화에 반드시 순응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의 다양한 변화상에 대해 변화는 새로운 혁신의 계기가 되고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는 사행심리에서 오는 도박사의 오류와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서는 아니 된다. 물론 그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현실을 투시할 수 있는 ‘인사이트’(insight)를 키울 필요가 있다.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배워야 알게 되고 알아야 통찰하는 눈이 열린다.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도박사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련의 확률적 사건들에서 상관관계를 찾아내려는 사고의 오류, 즉 서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착각에서 기인한 논리적 오류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정기적 개연성에 대한 원리의 의미를 오해하여 미래를 잘못 예측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도박에서 줄곧 잃기만 하던 사람이 이번엔 꼭 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앞에 일어난 사건과 그 뒤에 일어난 사건이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마치 연관성이 있다고 받아드리는 심리적 오류인 것이다. 몇 해 전 한 TV에서 딸 부잣집으로 불리는 가정의 부부와 일곱 명의 딸이 등장해 재미있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프로그램 중간에 사회자가 “어쩌다 딸만 일곱을 낳게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딸을 셋 낳으니까 사람들이 ‘딸 셋을 잇달아 낳으면 다음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하기에 낳았더니 또 딸이데요. 그런데 딸 여섯을 낳으니까 ‘다음엔 정말로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하기에 또 낳았더니 딸이었어요.” 이 대답 속에는 간단히 웃어넘길 수 없는 확률적 오류가 숨어 있다. 잇따라 딸을 다섯 낳았거나 아들을 다섯 낳았더라도 다음에 다시 아들을 낳을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딸을 셋 잇따라 낳으면 다음에 아들을 낳을 확률이 2분의 1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을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맹자(孟子)는 “공손추상편(公孫丑上篇)”에서 ‘오습거하(惡濕居下)’라는 비유를 들어 판단의 오류를 경계한다. 습기(濕氣)를 싫어하면 위의 마른 곳에 거처해야 하는데 거꾸로 아래의 습지(濕地)에 산다는 것이다. 남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 싫다고 하면서도 그 일을 벗어나지 못함을 뜻한다. 판단과 습관의 오류 때문이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리만큼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가고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서 현기증을 느낄 때가 많다. 가뜩이나 자동화로 인해 빨라진 변화가 코로나로 인해 더 빨라져 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생각도 달라지고 가치도 변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인 취미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이 지금껏 진리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째 공론화 단계에 머물렀던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은 코로나 19 사태 이후 거의 현행화 단계 즉 일상 속으로 녹아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을 바탕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을 주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제도가 다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은 도박사의 오류에 불과하다. 공산주의가 무산대중의 유토피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판단이요 과오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리에서 기인되는 착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행심리나 우연성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더 커지면서 그렇듯 공고하던 기존의 가치관이 시대의 변화를 만나 지진을 맞은 건물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가치관이나 신앙관이 흔들리는 현상을 가치관 또는 신앙관의 액상화(液狀化)라 한다. 리차드 바크의 청소년소설『갈매기의 꿈』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이상의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는 것을 사랑했다.” 조나단 리빙스턴이 나는 것은 가능해도 다른 갈매기들은 날 수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분명 틀린 생각이다. 조나단 리빙스턴이나 다른 갈매기들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꼭 같다. 꿈과 추구하는 취향이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가치관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변화에 반드시 순응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의 다양한 변화상에 대해 변화는 새로운 혁신의 계기가 되고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는 사행심리에서 오는 도박사의 오류와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서는 아니 된다. 물론 그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현실을 투시할 수 있는 ‘인사이트’(insight)를 키울 필요가 있다.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배워야 알게 되고 알아야 통찰하는 눈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