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제 2의 어거스틴(고백론)3

한국이 낳은 제 2의 어거스틴(고백론)3

          ▲   신상철 목사

제 1부 만남과 방황

  

하늘 문이 열리다

 

 

내가 처음으로 교회를 가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머니와 함께 출석하는 작천교회는 집에서 5리나 되었다. 어느 가을날 어머니를 따라 이웃 동네(야흥리) 마을로 구역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거기서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다. 나는 구역예배를 드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실 때 나도 그곳에 같이 있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

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8-20).

 

나의 꿈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함께 동행하는 내용이었다. 주님의 사역 현장마다 함께 있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 옆에 있었고, 무덤에 계실 때 그 옆에 있었으며 무덤이 갈라져 부활하실 때 같이 있었다. 내가 꾼 꿈은 여기까지이다.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3).

 

그런데 꿈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입신’이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하루가 좀 넘었다. 내가 꿈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에 주위 가족은 안절부절 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모, 선배 누나, 내 이종 동생친구들이 모두 나를 깨우려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주위 분들이 볼 때도 나는 분명 숨은 쉬고 있었는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날 오후 4시에 자연스럽게 깨어나게 되었다. 나에게 일어났던 꿈속에서 경험도 단순한 경험이 아니었다. 나는 이 때의 상황을 영적 경험 즉 영적순례자의 시간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순례의 시간도 나와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며 훗날 그분의 제자로 만드시려는 약속임을 확인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주님과의 영적동행자의 신비를 경험한 나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진되었다. 주님과 동행하며 기쁨을 누렸던 모습은 내게서 사라졌다. 나는 그 당시 기드온협회에서 제공한 조그만 성경책을 가지고 다녔는데 아무리 읽어도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는 마치, 기차가 내 앞을 지나 점점 멀어지듯 나도 그렇게 주님과 멀어지게 되었다.


서울로 향하는 소년

 

1950년 우리나라는 해방 후 정착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나라 사회는 궁핍의 표상이었다. 그런 사회 요건 아래서 8남매 중 세째로 태어났다. 당시 장자 우선 사상이 있어서 둘째 아들인 나는 모든 것을 포기당해야 했다. 당시 우리는 집 한 칸 없는 소작농으로, 어렵게 살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 했지만 중학교를 보내주지 못했다. 형제들이 많아서 먹을 것을 해결하기로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는 스스로 앞날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고향 탈출’이었다. 13살 어린소년의 생각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계획은 없었다.

 

10대 초반 어거스틴은 아버지에 의해서 고향을 떠났다면 나는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 고향을 탈출하였다. 나는 고향을 탈출하면서 돈이 없었기에 그해 농사지은 쌀 두 말을 훔쳐 시장에 가서 팔아 그것으로 여비를 하여 서울로 왔다. 서울에 아는 사람은 시청 옆에서 자장면을 파는 아는 형이다. 그 형이 내게 약속한 것은 서울에 오면 “밥은 먹여준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20일 만에 자장면 값을 훔쳤다는 명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냥 내보낼 수 없어 도둑 누명을 씌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나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나의 생각에는 서울로 오면 ‘무언가’ 희망이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시작부터 도둑누명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13세인 나는 고난과 시련을 온 몸으로 맞이하며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었다.

 

‘어찌 나는 이 고생을 다하는가? 무슨 부모가 중학교 보내줄 돈도 없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이런 삶은 계속될 것인가?’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시 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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