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신학의 필요성②: 통찰과 표현


권명수(햇살영성심리 상담연구소장)


 심층 신학의 필요성②: 통찰과 표현


지난 1회에서 필자는 심층 신학이 필요한 상황을 다루었다. 곧, 오늘 우리에게는 의례나 교리가 2000년의 역사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이런 현실에서 헤셀이 강조하는 심층 신학은 현재 순간의 내면성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곧, 우리가 행하는 종교 생활에서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은 심층 신학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통찰과 표현의 차이를 통해 살펴본다.

통찰(insight)과 표현(expression)의 차이는 상황적 사고와 개념적 사고와 비슷하다. 개념적 사고는 우리가 이해하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인 개념을 다룬다. 이에 비해, 상황적 사고는 인간이 겪는 경험을 어렴풋이 이해는 하나,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는 상황을 다룬다. 물론 인간이 겪는 경험에는 표현의 범위를 넘어가는 통찰도 포함하고 있다. 헤셀은 “우리의 종교 상황에서 초월자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이 존재하고 임재하고 계시며, 우리는 이를 증언한다”는 것이다.(<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 인간은 초월자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현존 안에서 존재하며, 인간은 단지 이를 증언한다. 그렇기에 헤셀은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종교 사상과 표현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제공하는 상징 이전의 지식을 순화한 것이다.(같은 책)

통찰은 인간이 묵상이나 활동 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뭔가 새롭고, 신비스럽고,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깨닫게 되는 무엇이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이고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한 경험을 기술하는 표현은 통찰과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두 사건 간의 시간적인 거리가 존재한다. 통찰이 일어나는 시간과 이를 표현하려는 시간은 상황에 따라 시간의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교 경험을 이야기할 때에는 통찰이 일어날 때의 경험의 질과 이를 기술하는 표현의 질에 차이가 있음을 필히 고려해야 된다.

둘째, 통찰이 일어나는 순간은 경험 내부에서 겪는 소용돌이 치는 인지적·정서적 격변 속에 있다. 그러므로 강한 인지적·정서적 경험에 대해 빠져 나와 거리를 두고 성찰하고 정리하여 기술하는 표현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두 존재 양태는 매우 다르기에 양쪽 모두 서로의 차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 둘을 하나의 범주로 분류해서 전자인 통찰에 대한 학문적 배려와 고려가 부족했다. 왜냐하면 후자의 표현인 신학적 고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 통찰과 표현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양자 간에 화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부조화가 신학의 역사에 부각되어 왔다.

경험의 순간과 마음을 다루는 심층 신학의 목표는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궁극적 질문에 자극을 받아 존재의 근간이 되는 어떤 것을 밝히 드러내려고 한다. 그래서 헤셀이 주장하는 심층 신학의 주제는 “신앙의 생성(the genesis of faith)”이다.(<안전치 못한 자유>) 심층 신학은 인격적인 종교적 통찰뿐만 아니라 종교 전통에 대한 기억도 필요로 하는 하나의 학문이다. 신앙의 생성에는 종교 전통에 속한 인간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통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층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헤셀은 “인간은 개념보다 더 심층에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언어적 표현으로 접근할 수 없는 통찰도 소유하고 있다. 특별히 인간은 종교가 탐구하는 궁극적인 통찰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인간은 특별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며 인간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자율적 역할을 부여한다. 궁극적인 통찰은 “경탄이나 아주 깜짝 놀라는 수준에서, 경외하는 마음의 심층에서, 신비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 근거하여 일어난다(같은 책). 인간에게 통찰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는 영역을 초월하여 일어나며, 통찰이 일어날 때 인간은 이를 알아차리며 신앙이 생성되어간다.

이런 차이로 인해 신앙인들은 삶의 현장에 임재하시는 주님과의 접촉과 이를 알아차림으로 깨닫는 통찰을 경험하는 은총의 순간들이 다가온다. 이런 귀한 순간들은 통찰이 일어나 주님에 대한 신앙을 생성시키는 소중한 선물이 된다. 이런 경험들을 표현하려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일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음에 당혹해하는 이들 또한 많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자. 헤셀도 종교적인 통찰은 표현하려고 하면 아주 긴 거리를 여행해야만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자신이 받은 통찰을 묵상하고 나에게 주신 의미를 되새김질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다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기쁨과 감사로 가득하게 된다. 이 통찰은 주님이 함께 하시며 주신 증표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