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그 대단한 축복

오경자 (수필가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대면, 그 대단한 축복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상적으로 해 오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것이 바로 삶 그 자체이고 그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고 주부는 식구들 다 나가고 나면 집안을 치우고 먹을거리들을 챙겨 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장에 다녀오고 볼일이 있으면 외출했다 오고, 그러면서 그 일상에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마냥 그날이 그날임을 한탄하거나 좀 별다른 삶을 사는 친구를 생각하며 부러워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네 일상이었고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남의 밭에 콩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그날이 그날인 내 삶은 별 볼일 없는 것이고 아무개의 성취가 한껏 부럽기만 한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했다. 어느 친구의 남편은 돈도 잘 벌어오고 누구네 집은 집을 이사 할 때 마다. 뻥튀기를 하는데 자신은 항상 그날이 그날이고 집도 살 때는 비쌌는데 팔려면 남보다 싸게만 팔았다. 그러지 않으면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자기만 잘못 되는 것 같은 생각에 억울하고 신세한탄이 나오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사물을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걸어다닐 수 있고 손으로 마음껏 무엇을 만들 수 있다는 일에 신기해하거나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별 이유 없이 손목이 시큰거려 칼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김치 한 포기를 자르는데 손목에 힘을 주면 아파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칼등을 지그시 눌러가며 겨우 썰어서 보시기에 담았다. 그 순간 손목만 조금 시큰거렸기에 이 정도라도 하지 만약에 손이 전체적으로 아프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하나님 고맙습니다. 이만큼 아프게 하셔서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조심하고 아껴 쓸게요. 하면서 줄줄이 감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네 말 중에 대면이라는 말을 그전에는 삼자대면하자고 할 때만 들은 것 같은 기억이 날 정도로 일상에서는 잘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만난다, 본다, 하는 말을 많이 썼지 대면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고 살았다. 그 대면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내왔다. 그러던 대면이라는 말이 비대면 이라는 반대말과 함께 우리 생활 속의 일상어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어느새 3년으로 접어드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 대면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것인지도 비대면을 강요받으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무 때나 만나서 밥 먹고 놀던 친구들을 마음 놓고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릴지는 그야말로 상상도 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김치찌개 한 냄비 끓여 놓고 이웃이 둘러앉아 앞 다투어 숟가락을 들락 거리며 웃음꽃 피우던 때가 이토록 그리운 추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한 냄비에 숟가락을 함께 들이밀며 먹고 즐기던 우리네 풍습을 조금씩 고쳐 나가기 시작은 했지만 이제 생각하면 소름끼치도록 야만(?) 이었다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누군가와도 가까이 하는 것 보다는 멀리 하는 것이 더 덕이 되는 해괴한 세상을 살게 될 줄 꿈엔들 알았겠는가?

김치 한 포기 써는데 불편을 느끼게 아프고서야 온몸의 건강함에 감사의 기도가 밀려 올라오듯 대면이 비대면으로 강요당한 후에서야 대면이라는 일상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만날 수 있는 수효가 6명에서 4명, 심지어 2명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다음 주 부터는 6명까지 만날 수 있다고 발표되었다. 아무리 그렇게 강요해도 한 식탁에 앉지만 못하고 멀리 떨어진 식탁에 띄어 앉아 밥을 먹으며 그것도 감지덕지하며 숨어서 눈인사만 하는 기이한 새 풍속도가 생겨났다. 온 국민의 속임수 (?) 훈련이라 이름 붙여 가며 비아냥거리는 나 자신 부터도 그런 일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다.

사람은 어울려 사는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게 그 말아닌가. 본성을 거스르며 산다는 일은 매우 힘들고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 올해로 넘어온 코로나가 음력 섣달그믐에는 짐을 싸고 떠나 달라고 기도한다. 너무 길어지면 우리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변형되고 왜곡되어 재미없어진다. 그동안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만 했던 우리들의 잘못을 회개 하고 엎드려 기도하자, 이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간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힘 아니고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분수를 알고 기도하며 살게 하시고 제발 이제 거두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