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언제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겨울은 언제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미국 배우들 중에 이탈리아계 미국출신 마이클 실베스터 가르덴치오 스텔른(Michael Sylvester Gardenzio Stallone, 1946- )이라는 배우 겸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1969년 23세 때부터 영화배우로서 활동을 했으나 30세 때까지 무명 배우로서 별 수입도 없이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다가 1976년에 존 아빌드센 감독의『록키』(Rocky)라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무명배우 실베스터 스텔른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이 영화의 각본을 썼고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가 성공한 이후 록키 시리즈는 모두 스텔른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100만 달러 수준의 초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영화는 스포츠 영화사상 가장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가 된다. 30세까지 세텔른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는 호랑이(Tiger) 정신으로 버텨내서 각본 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영화배우로서 봄을 맞는다.

매년 나무들에게 겨울이 찾아오듯이, 우리 인간의 삶에도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온다. 나무들 특히 겨울나무들을 보면, 장하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 겨울 나뭇가지의 백미는 겨울눈에 담겨 있다. 겨울눈은 어려운 계절을 견뎌내는 나무의 지혜인 동시에 미래라 할 수 있다. 나무들은 봄이 돌아와 새로 자라날 아주 어리고 여린 미래의 꽃과 잎들을 눈 속에 담고, 우리가 겨울 코트를 입듯이 껍질을 단단히 만들어 추위와 위험에서 보호한다. 모진 겨울을 잘 견디는 것은 당연히 받을 어려움이 오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추위에도 잘 견딜 수 있을 튼튼한 자신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나무의 방법이다. 겨울눈을 만드는 일 이외에도 나무들은 추위가 스며들 약한 곳을 차단하고, 얼지 않도록 수분을 차단하여 농도를 낮추고 당분 농도를 높이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늘 푸르기만 한 소나무들도 결코 가만히 서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 함량을 높여 겨우내 조금씩 소모할 에너지를 저장하고 더불어 외부 추위를 막는다. 찬 기운이 드나드는 조직의 구멍들은 주변에 두꺼운 세포벽과 아주 두꺼운 왁스층을 만들어 효과적인 열과 물 관리가 가능하도록 한다. 때론 겨울 추위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터전을 확대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바위틈에 실뿌리를 많이 만들어 주변의 습기를 가능한 최대로 모아 놓으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 때 물이 얼어 부피가 늘면서 바위가 벌어지고, 그 틈새로 뿌리가 깊이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통찰은 겨울을 지내면 나무나 인간이나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도 나무들의 그런 지혜와 준비성을 배워야 하고 부단히 그런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나무들은 겨울 끝에 반드시 희망의 새봄이 오고 있음을 알기에 아프고 추워도 참고 견디며 봄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만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동토에도 봄은 찾아와 싹이 돋아나고 잎이 생기고 줄기가 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게 된다. 유비무환의 준비와 내공을 갖추지 않으면 나무처럼 고사하거나 동해를 입어 살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다른 새로운 것과 다투질 말고 잘 아우러져 새로운 봄과 같은 초록빛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힘을 금년의 사자성어인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호랑이 같은 매서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물과 사건 또는 상황을 직시하고 소와 같은 우직하고 진중함과 견인불발의 걸음으로 만난을 헤쳐 나아가는 슬기로운 정신 말이다. 이런 정신이 겨울을 견뎌내게 하고 봄이 오면 눈부신 꽃을 피게 하는 것이다.

2021년 12월 31일자『조선일보』오피니언 난 두 줄 칼럼(18)에서 이동규 교수가 “태평성대는 강자의 지옥이고, 난세는 약자의 지옥이라 한다. 태평성대에 영웅이 나온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 다 잘 나가는데 내게 무슨 기회가 생길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틈틈이 내공을 길러온 사람에겐 난세야말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라고 말한 것처럼 겨울 나뭇가지가 겨울눈을 그 어려운 계절을 견뎌내듯이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오래 지속되는 위기를 이겨내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에너지는 겨울눈 같은 내공과 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난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준비와 내공을 갖출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