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1 정신

2021-02-25

오늘의 3.1 정신 

        이선규목사(논설주간)


3.1절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3월이다. 1904년 러,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에 완 전 병합을 위해 강행의 속도를 재촉 하고 있었다.

동년에 한일 협약이 강요되어 고문 정치가 시작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통감정치가 시작 되어 1910년에는 마침내 나라를 잃어버리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한국인은 이때에 절망 외에는 아무것도 손에 쥐는 것이 없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기독0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 했다.이즈음  기독교인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희망의 휏불을 들고 민족의 앞길을 밝히었다.

기독교는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진 세상에 평화를 세우는 종교이다. 서로가 싸우는 것이 죄아래 있는 인생들이라면 하나되어 평화를 이루는 것은 주님의 뜻이다.

교회 안 밖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오늘의 상황에 3.1 정신을 되새겨 본다.

3,1정신이란 

첫째 3.1독립 운동은 전적으로 민중운동 이었다는 사실이다. 2천만 명의 민족이 스스로 일어나서 참여한 독립 운동이었다. 일제의 군대와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대부분은 약하고 이름 없는 풀뿌리 들이었다.

이러한 민중의 참여가 식민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며 세계인의 관심과 지원을 유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3.1독립 운동은 동학과 서학이 함께 손을 잡고 일으킨 운동이다.  천도교와 기독교가 주축이 되어 독립 운동에 서명함으로써 독립 운동의 열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독립 운동에 참여한 열기에 있어서는 개신교회가 단연 으뜸이었다.

지방마다 모임을 꾸미고 추진한 자리는 예배당이었고 파손된 건물만 해도 개신교 예배당이 대부분 이었다.

교회는 민족의 대명제인 독립과 해방을 벌이는 일에 있어서는 더 많은 희생을 감수 하면서도 천도교와 불교와도 손을 잡은 것이다. 말로만 아니요 생각만 품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으로 희생과 협력의 산 모범이 된 것이다.

셋째: 3.1 독립 운동은 일본 유학생들의 불 씨앗이 3,1 정신으로 타오르게 되었다. 그 주동 세력의 대부분은 개화기의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동경주재 한국인 기독 청년회관 (YMCA) 시작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본 제국의 심장부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통치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우리는 지금 나라를 세운지 74년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외쳤던 그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현하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루고 섣부른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아직도 외세에 의존하는 자주민이라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현실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지금은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기본 정신을 회복 할 때라 확신 한다. 나라를 위하고 겨레를 구할 수 있다면 동학과 서학이 함께 손을  
잡아던 것이  여와 야, 도시와 농촌,  우와 좌이면  어떠한가? 서로가 양손을 내밀고 화해와 용서를 구할 때이다.

조선 시대 삼분의 2가 노비 세상 이었다는데 그 신분의 변화의 역사는 조선의 정부 정책에 의한 것이겠지만 노비 자신들이 일어나 자주를 찾고자 한 것도 노예 신분을 떨쳐 버릴 수 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학과 서학도 손을 잡았는데 어쩌자고 여와 야를 편을 갈라 못 건널 강을 이루고 양반 상놈을 구분한다는 말인가?

건달에는 무위도식이란 역린이 있고 청부에겐 부 정절이란 역린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의 역린을 지니고 있기 마련 ... 흔히 우리는 우리의 생활 영역에서 상대방의 결점을 덮어주고 흉허물을 눈감아 주는 걸 예의로 안다.

하지만 이런 처세의 미덕이 지나친 나머지 장단 선악 (長短 善惡) 미추 (美醜)

정사(正邪) 를 분별하는 안목을 잃는다면 탈 중의 큰 탈이 아닐 수 없다.

건달을 재간꾼으로 도둑을 활빈당으로 창부를 정절부인 이라 할 수 있는가?

있다면 이는 예의도 미덕도 아니다.어디까지나 거짓이요. 위선이며 패덕일 뿐이다.

만약 어느 뒤안길일지라도 이따위 거짓과 패덕이 활보하고 있다면 그곳엔 정의가 자랄 리 없고 양심이 꽃 필 리가 없으며 진실이 열매 맺을 리 만무하다.검은 것은 검다고 말하고 흰 것은 희다고 주장 할 수 있는 풍토 그래서 시시비비를 오히려 권면하는 가운데 용감한 직간 (直諫)과 정직한 충고에 인색치 말고 포용하는 아량을 가져 야 할 것이다.


3.1정신은 이포용 정신을 살리는 일은 우리 전후 세대의 자산이요 살의접착제가 되기 때문이다.

정직이야 말로 과대 선전 (過大 善戰)허장성세 (虛葬 成歲) 권위지상 주의 (至上主義) 눈 치보기 아부, 아첨 교만, 비굴 등 우리 주변의 짜증스런 공해를 제거해줄 정화력 (淨火力) 또는 표백제와 같은 것이다.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나라를 욕되게 한다” (잠언 14;34)는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이며. 정직한 사람이 축복 하면 마을이 흥하고 악한 사람이 입을 열면 마을이 망한다. (잠언11;11는 말씀을 음미하며 살아야 한다. “선을 세우는 사람은 뽑히지 않는다는 말씀은 오늘도 변치 않는 진리이다. 지금이야 말로 국가의 비상시국이다.

서로가 잘나고 못난 것을 따지기에 앞서 우선 파국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정의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일에 기독교인 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이 그 숫한 희생과 파손의 아픔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감연히 일제에 맞섰던 3.1정신 이었고 독립 운동이었다.

이 정신을 되찾는다면 코로나 사태와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우리는 하나님과  조상앞에 흠 없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새로운 기회가 돌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권면 하고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스스로 겸손 하십시오 ...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 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실 것입니다. (벧전 5:6-11)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겸손하게 사는 일이다. 국민들 뿐 아니라 교계 안에 실망감이 역력하다.

지금 우리는 교회의 부흥은 고사하고 교회 유지조차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삼일정신으로 무장 된다면 이보다 더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이루어 내는 자랑스러운 민족이 되리라 확신한다.

주께서 말씀 하십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둘로 갈라진 조국을 하나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낼 수 있기를 희망하며 3,1 정신으로 깨 어 나기를 소원한다.

민족이 하나 되고 평화 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기도의 손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