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

2022-09-30


요즘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 이단 사이비로 지목받는 교단의 본부 건물 건축이 한창 진행 되고 있다.

무엇이 꺼리는지 알림판을 걸지 않고 진행하다가 이웃의 지적을 받고 통행인이 보이지 않는 곳에 표지판을 달아 놓았다. 이웃에게 질문을 하니 사무실과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건물 이라 한다.

지역 교회와 협의하고자 담임 목사와 통화를 하려니 바쁜 이유로 통화하기가 어렵다.

또 다른 교회를 방문하니 자기교회 목회도 힘든 상황에서 그런 곳에 신경 쓸 여지가 없노라고 한다. 한국 교회의 현 주소를 보는듯하여 씁쓸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교회가 한 마음으로 일치해도 밀려오는 이단 사이비뿐만 아니라 ‘신비주의’ 기복주의 ‘세속화’ 물량주의 등을 대처하기가 벅찬 상황에 교회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연합이나 일치는 관계가 멀어만 가고 있는 듯하다. 오직 자기만족 자기 교회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나뉘기는 쉬워도 일치하기는 힘든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나누인 것은 나누인 채로 굳어져서 다시 합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또 ‘나누이면 약하고 합하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평범한

진리이다. 나누임에는 아픔이 있고 합함에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우리는 익히 아는 바이다. 그동안 장로교 간판을 내세우는 교단만 200여 교단이 넘는다고 하니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이다.

나누어지는 아픔도 컸지만 나누어짐으로 얻은 결과는 교회 이미지추락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뜻을 같이하는 분들에 의하여 연합 기구를 설치하고 연합운동을 전개하여왔다. 그러나 요즘 연합운동을 둘러싼 혼선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연합 정신이 갈수록 퇴조하고 이에 따라 연합 기구나 연합 사업의 위상 과 활동이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통합 측 총회 에서는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교회 연회 탈퇴안건이 몇 노회에서 올라 왔었는데 금년에는 감리교단에서 조차 연합회에 부담하는 부담금과 연합기구 탈퇴 건을 감독 후보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서신을 보냈다고 하니 연합기구의 활동이나 사업은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 들것은 예측되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교단이 연합해서 세운 기구들이 교단 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의 근본원인은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연합운동이나 사업에 대한 이념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연합 기구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의 안일함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선 목회자 역시 연합 운동이나 사업의 의미나 활동을 교인들에게 제대로 주지시키지 못 한 책임을 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교회의 연합 운동이나 사업은 몇몇 인사들에 의해 주도 되었고 그 사업이나 안건조차도 근거가 희박한 공허함만을 키우지 않았나를 진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에 와서는 아예 비틀 거리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오죽하면 흔한 말로 한국교회를 빗대어 말하기를 ‘예수와’ ‘그리스도’ 가 싸우는 현장이라고 말했던가? 빗대어 하는 말이라고 해도 듣기가 민망하다. 나누이기는 쉬워도 합하기는 힘 들다. 성서는 가리킨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분 이시요 거기에 이름마저 하나님이신데 거기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끊어 질 수 없는 사이 라고 하신다. 아무리 인간적인 관계와 감정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라고하면 하나 됨을 굳게 세우는 일에 이유를 댈 수 없을 것이다. 교회란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기본적 의무는 ,예배, 전도, 교육, 봉사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여기에 교회 일치는 중세 카톨릭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세속화 되었을 때에 개혁자들의 부르짖던 표어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름 받은 선교 공동체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이야 말로 현재상황에서 회복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지만 기본으로 돌아와 하나 되는 길이야말로 회복의 시급한 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할 대명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