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규목사(논설주간)
오래간만에 유년 교회학교 시절 고향의 교회를 시무하셨던 사모님과 통화를 하였다. 그동안 목사님 내외를 마음에 그리워하고 있던 중 수소문하여 통화를 시도하여 성공을 이루었다. 목사님은 몇 년 전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자녀들은 출가시키고 사모님만 홀로 생활한다면서 반갑게 맞이하신다. 본인은 왜 이렇게 목사님을 찾고 있었을까? 아마 그 이유는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나의 신앙생활에 큰 감화를 준 까닭일 것이다. 그분에 대하여는 잊을 수 없는 인상들이 마음에 서려 있지만 그 중에 하나, 어려운 가정에는 몸을 아끼지 않고 섬기시던 모습이 오늘날 본인 에게도 그 흔적만은 지울 수 없었는가 보다. 농촌 교회를 담임하고 힘든 사역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우 며 도전의식을 심어 주기도 하였으며 겨울을 나기 위해 손수 교인들과 함께 교회뒷산에서 땔감을 마련하고 한겨울을 나기도 했다. 매년 맞이하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지만 ”섬기려고 오셨다“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흔히 섬김이란 낮아지고 대접을 잘하며 봉사에 앞장서고 이웃에게 잘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이란 예수님께서 몸으로 보여 주셨듯이 마음 상한자, 병든 자. 죽을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인간의 잣대로 보아서 섬길만한 사람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가장 낮고 작은 자, 소외당하고 헐벗은 자를 섬기는 자가 아니겠는가. 라고 본인은 이해한다. 사람은 누구나 연결된 고리 속에 살고 있다. 기업도 독자적인 경영이란 있을 수 없고 상하의 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나라를 잘 다스려 튼튼히 뭉치게 했고 국민 모두를 일치단결 시키는데 성공을 이루었다고 자부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가 아돌프 히틀러이다. 그는 신과 같이 군림하면서 지구촌을 한손에 휘어잡을 꿈을 꾸었다. 반체제 인사들을 몰살시키고 독일 우 혈 주의에 위배 되는 유태인을 대량 학살하였다.역사는 그를 어떻게 판단할까? '잔인무도한 독재자,' '전대미문의 살인자', '과대망상의 정신분열증' 환자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사랑의 지도자가 있다. 일본의 도꾸가와 이에야스이다. 그는 어느날 아들을 앉혀 놓고 부하를 다스리는 법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고 전해진다. 대장이란 존경받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탐색 당하고 있고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경멸당하고 아는것 같지만 미움 당하고 있는 거야야 알았지 그러므로 부하에겐 녹(봉급)으로 붙들어도 안되고 눈치를 보거 나 지나치게 가까이 해서도 안되며 화를 내게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행동거지가 부하들과 다르지 않으면 안 되지!. 그들이 쌀밥을 먹으면 너는 현미나 보리밥을 먹어라. 부하들이 일찍 일어나면 너는 더 일찍 일어나거라. 그리하여 그들이 네 곁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대장부의 수업이란다. 반하고 또 반하게 만들어 심복이 되고 감탄하고 또 감탄시켜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가는 거야“ 라고 말했다. 평생 부친의 교훈을 새겨 듣고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 후손들이 요즘 일본인들의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는 2021년전 무명의 12명의 제자 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탐내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스승께서 “너희들은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지만 높은 사람이 되고자하면 낮은 자세로 임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오히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20:26)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본다. 너희들은 그와 같이 처세해서는 안 된 다고 가르치셨다.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펴 냈지만 다스리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간단 하면서도 정확하고 차원 높은 가르침이다. 최후의 시간이 가까히 다가 왔을 때고민하며 죽게 생겼노라 하심이 그저 죽음의 두려움 때문 이었을까? 죽어야 함을 미리 아시고수난예고 하시면서 담담해 하셨는데 왜 그러한 고민이 터져 나왔을까? ‘나를 위하여 잠시도 기도 할 수 없느냐?,죽어도 당신을 버리지 않겠노라 맹세한 제자의 나 몰라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자는 정해진 길을 가거니와 너는 나지 않음이 좋을 뻔 하였도다, 사랑의 배신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섬기러 오신 자신의 의도를 모르는 제자들의 무지 때문이었을까?, 주님은!죽음의 기로에 설 때결국은 혼자인 고독 때문이 아니었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에게 조차 버림받은 젊은 예수의 고민은 어떤 것이었을까?사순절 셋째 주일에 묵상해 본다. 오늘의 한국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신뢰도는 거론하기 조차 부끄러워진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진단 할 수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교파의 난입과 너무 쉽게 목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는 점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의 겸손을 오늘의 지도자들이 본받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원한다. 고향 교회의 어릴적 꿈을 심어 주고 섬기시던 목사님이 그리워 진다. |
이선규목사(논설주간)
오래간만에 유년 교회학교 시절 고향의 교회를 시무하셨던 사모님과 통화를 하였다.
그동안 목사님 내외를 마음에 그리워하고 있던 중 수소문하여 통화를 시도하여 성공을 이루었다.
목사님은 몇 년 전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자녀들은 출가시키고 사모님만 홀로 생활한다면서 반갑게 맞이하신다.
본인은 왜 이렇게 목사님을 찾고 있었을까? 아마 그 이유는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나의 신앙생활에 큰 감화를 준 까닭일 것이다.
그분에 대하여는 잊을 수 없는 인상들이 마음에 서려 있지만 그 중에 하나, 어려운 가정에는 몸을 아끼지 않고 섬기시던 모습이 오늘날 본인 에게도 그 흔적만은 지울 수 없었는가 보다.
농촌 교회를 담임하고 힘든 사역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우 며 도전의식을 심어 주기도 하였으며 겨울을 나기 위해 손수 교인들과 함께 교회뒷산에서 땔감을 마련하고 한겨울을 나기도 했다.
매년 맞이하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지만 ”섬기려고 오셨다“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흔히 섬김이란 낮아지고 대접을 잘하며 봉사에 앞장서고 이웃에게 잘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이란 예수님께서 몸으로 보여 주셨듯이 마음 상한자, 병든 자. 죽을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인간의 잣대로 보아서 섬길만한 사람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가장 낮고 작은 자, 소외당하고 헐벗은 자를 섬기는 자가 아니겠는가. 라고 본인은 이해한다.
사람은 누구나 연결된 고리 속에 살고 있다. 기업도 독자적인 경영이란 있을 수 없고 상하의 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나라를 잘 다스려 튼튼히 뭉치게 했고 국민 모두를 일치단결 시키는데 성공을 이루었다고 자부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가 아돌프 히틀러이다. 그는 신과 같이 군림하면서 지구촌을 한손에 휘어잡을 꿈을 꾸었다.
반체제 인사들을 몰살시키고 독일 우 혈 주의에 위배 되는 유태인을 대량 학살하였다.역사는 그를 어떻게 판단할까? '잔인무도한 독재자,' '전대미문의 살인자', '과대망상의 정신분열증' 환자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사랑의 지도자가 있다. 일본의 도꾸가와 이에야스이다. 그는 어느날 아들을 앉혀 놓고 부하를 다스리는 법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고 전해진다.
대장이란 존경받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탐색 당하고 있고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경멸당하고 아는것 같지만 미움 당하고 있는 거야야 알았지
그러므로 부하에겐 녹(봉급)으로 붙들어도 안되고 눈치를 보거 나 지나치게 가까이 해서도 안되며 화를 내게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행동거지가 부하들과 다르지 않으면 안 되지!. 그들이 쌀밥을 먹으면 너는 현미나 보리밥을 먹어라. 부하들이 일찍 일어나면 너는 더 일찍 일어나거라. 그리하여 그들이 네 곁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대장부의 수업이란다. 반하고 또 반하게 만들어 심복이 되고 감탄하고 또 감탄시켜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가는 거야“ 라고 말했다.
평생 부친의 교훈을 새겨 듣고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 후손들이 요즘 일본인들의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는 2021년전 무명의 12명의 제자 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탐내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스승께서 “너희들은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지만 높은 사람이 되고자하면 낮은 자세로 임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오히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20:26)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본다.
너희들은 그와 같이 처세해서는 안 된 다고 가르치셨다.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펴 냈지만 다스리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간단 하면서도 정확하고 차원 높은 가르침이다.
최후의 시간이 가까히 다가 왔을 때고민하며 죽게 생겼노라 하심이
그저 죽음의 두려움 때문 이었을까? 죽어야 함을 미리 아시고수난예고 하시면서 담담해 하셨는데 왜 그러한 고민이 터져 나왔을까?
‘나를 위하여 잠시도 기도 할 수 없느냐?,죽어도 당신을 버리지 않겠노라 맹세한 제자의 나 몰라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자는 정해진 길을 가거니와 너는 나지 않음이 좋을 뻔 하였도다,
사랑의 배신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섬기러 오신 자신의 의도를 모르는 제자들의 무지 때문이었을까?,
주님은!죽음의 기로에 설 때결국은 혼자인 고독 때문이 아니었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에게 조차 버림받은
젊은 예수의 고민은 어떤 것이었을까?사순절 셋째 주일에 묵상해 본다.
오늘의 한국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신뢰도는 거론하기 조차 부끄러워진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진단 할 수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교파의 난입과 너무 쉽게 목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는 점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의 겸손을 오늘의 지도자들이 본받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원한다.
고향 교회의 어릴적 꿈을 심어 주고 섬기시던 목사님이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