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맞이하며

2022-12-28

성탄절을 맞이하며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다.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에 성탄절의 의미를 되살려본다.

내 어릴 적, 성탄절은 손꼽아가며 기다려지던 날이었다. 지금은 거리마다 들려오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그때의 설레던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날 중고등부 시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동방박사 세 사람’,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우리 구주 나신 날’ 성탄 찬양을 부르며 새벽송을 부르던 날들이 그립다.

다섯 살 때부터 교회에 가서 예배드렸다. 성탄절 전야제에 목조교회에서 ‘고요한 밤’을 무용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니 강홍자 선생님이 잘했다며 안아주었을 때 박하분의 향긋한 냄새가 향긋했다.

아기 예수가 말구유에서 나신 성탄절은 찬양이 메들리로 부르는 그야말로 즐거운 날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따뜻한 밥을 먹는 것처럼 행복하게 해준다.

세월이 흐르고 결혼해서 거실에서 남편과 딸아이와 같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일은 즐거웠다. 성탄 전야제에 우리 가족 남편과 나 딸과 같이 교회에 갔다. 전야제가 끝날 무렵 산타클로스가 등장하여 주일학교 아이들과 우리 딸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광경이 아름다웠다.

여고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던 일은 가슴 설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 학생회 회원들과 함께 성탄절 새벽에 성도들의 집을 돌며 새벽송을 부른 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교인들은 대문을 활짝 열고 우릴 반갑게 맞아주며 과자와 사탕을 한 아름씩 주었다. 얼마나 먹을거리를 많이 받았는지 마대자루에 먹거리가 가득했다. 새벽송 후에 장로님과 권사님 집에 가서 온갖 꾸미의 따끈한 떡국을 먹으며 추운 몸을 녹이면서 입과 눈이 휘둥그레지며 즐거웠다. 밤을 지새우며 우리는 각자 준비한 선물을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날 포장한 선물은 제비뽑기해서 받았는데. 내 선물이 아주 커서 궁금하여 열어보니 강냉이 튀긴 게 가득 들어 있어 다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웃음보를 터뜨렸다.

여고 3학년 때도 생각난다. 성탄절 즈음에 신명학교와 계성학교 학생들 15명으로 이루어진 ‘백향목 클럽’의 회원들이 대구 중앙로에서 털로 짠 장갑과 목도리 선물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그 일대 껌팔이와 구두닦이 소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때 무슨 대단한 봉사자가 된 듯벅찬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근래에는 지난날 성탄절의 모습이 사라져 아쉽다. 성탄절에만 볼 수 있었던 카드를 주고받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화되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람들은 수시로 선물과 여러 명목의 카드를 주고받는다. 생일, 발렌타인데이(Valentine's Day), 화이트 데이(White Day), 설날, 추석, 입학, 졸업, 취업 …으로 카드선물이 흔해졌다. 축하하는 카드의 종류 및 이름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지난날의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던 일은 이제는 먼먼 옛날얘기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란 노래는 동화 속에 존재한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 준 손실의 하나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가장 순결하고 겸손하신 분으로, 천한 창기와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제자들에게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성탄절에 크리스천인 우리의 자세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게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