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평에는 지리적인 여러 조건이 갗 추어져 있음에도 발전이 지연 되는 감이 있으나 근래에 중앙선이 생긴 후로 ‘아심역’ 부근에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원 돌로 쌓은 집이 있어 화재인 곳을 찾게 되었다.
그 집이 바로 장성룡 목사님이 운영하는 천의 얼굴 이라는 수석실이 있는 집이다.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듣던 천의 얼굴을 한 수석실을 방문하니 상상 이상의 감동의 순간 이었다.
아신역에 마중을 나와 함께 돌집에 도착하여 수석이 전시 되어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상상 하기도 어려운 각양각색의 수석들이 왜 이제 왔느냐고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눈에 띠게 다가오는 수석을 만지면서 혼의 울림이 들려온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갈기고 쓸린 흔적들이 묻어나는구나.
이 많은 수석들이 어디에서 실려 왔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곳에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 인가? 의문에 꼬리를 물고 있는 중 목사님께 질문하니 목사님의 대답은 진열 된 것들 중 반 정도는 정리를 했고 남은 것이라고 말을 건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모습 분리된 십자가형상 부활의 모형까지 말로 이루 다 표현하기도 벅 찬다.
수석실을 둘러 작업실을 보니 수석의 받침들은 손수 수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장애를 가진 분이 어떻게 이런 수공업을 하실 수 있었을까? 고개가 숙여진다.
수석실을 관람 하고 나오는 도중 작은 모양의 도자기를 선물 하시고 자신의 자서전 책 한권을 건네주시어 집에 와 책을 펼쳐보니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일어선 목사 님 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수석을 좋아하고 그 채집과 감상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하늘 바람이 늘 들고 난다.

그의 심장은 바울의 선교 정렬이 용광로 불길처럼 옮겨와 언제나 뜨겁고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성령의 체험을 지닌 부흥사 기질과 사회정의를 목말라하는 사회 참여적 인권목사 기질을 한 몸에 동시에 갗 춘 목자이기 때문이라고 한 김경재 교수님의 글 에 공감을 보낸다.
한마디로 가장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인 평행을 잃지 않은 목회자라는데 긍정이 간다.
자서전에서 그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거기에 사고로 한쪽 손도 잘렸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타 학생보다 두 배의 기간이이나 걸려 신학교를 나왔으나 꿈은 굽히지 않고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여 목회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으며 이런 고난을 극복한 분이기에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젊은이들과 후배들에게서 요즘 주위에 참 어른을 만나보기 힘들다는 푸념석긴 말을 듣게 되는데 장 목사님의 삶이 귀감이 되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참된 어른과 같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이선규 기자 씀)
나는 이론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니다
경기도 양평에는 지리적인 여러 조건이 갗 추어져 있음에도 발전이 지연 되는 감이 있으나 근래에 중앙선이 생긴 후로 ‘아심역’ 부근에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원 돌로 쌓은 집이 있어 화재인 곳을 찾게 되었다.
그 집이 바로 장성룡 목사님이 운영하는 천의 얼굴 이라는 수석실이 있는 집이다.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듣던 천의 얼굴을 한 수석실을 방문하니 상상 이상의 감동의 순간 이었다.
아신역에 마중을 나와 함께 돌집에 도착하여 수석이 전시 되어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상상 하기도 어려운 각양각색의 수석들이 왜 이제 왔느냐고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눈에 띠게 다가오는 수석을 만지면서 혼의 울림이 들려온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갈기고 쓸린 흔적들이 묻어나는구나.
이 많은 수석들이 어디에서 실려 왔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곳에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 인가? 의문에 꼬리를 물고 있는 중 목사님께 질문하니 목사님의 대답은 진열 된 것들 중 반 정도는 정리를 했고 남은 것이라고 말을 건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모습 분리된 십자가형상 부활의 모형까지 말로 이루 다 표현하기도 벅 찬다.
수석실을 둘러 작업실을 보니 수석의 받침들은 손수 수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장애를 가진 분이 어떻게 이런 수공업을 하실 수 있었을까? 고개가 숙여진다.
수석실을 관람 하고 나오는 도중 작은 모양의 도자기를 선물 하시고 자신의 자서전 책 한권을 건네주시어 집에 와 책을 펼쳐보니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일어선 목사 님 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수석을 좋아하고 그 채집과 감상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하늘 바람이 늘 들고 난다.
그의 심장은 바울의 선교 정렬이 용광로 불길처럼 옮겨와 언제나 뜨겁고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성령의 체험을 지닌 부흥사 기질과 사회정의를 목말라하는 사회 참여적 인권목사 기질을 한 몸에 동시에 갗 춘 목자이기 때문이라고 한 김경재 교수님의 글 에 공감을 보낸다.
한마디로 가장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인 평행을 잃지 않은 목회자라는데 긍정이 간다.
자서전에서 그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거기에 사고로 한쪽 손도 잘렸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타 학생보다 두 배의 기간이이나 걸려 신학교를 나왔으나 꿈은 굽히지 않고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여 목회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으며 이런 고난을 극복한 분이기에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젊은이들과 후배들에게서 요즘 주위에 참 어른을 만나보기 힘들다는 푸념석긴 말을 듣게 되는데 장 목사님의 삶이 귀감이 되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참된 어른과 같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이선규 기자 씀)
나는 이론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