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사람이다

2022-03-21

유 승 우(시인 문학박사)


몸이 사람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믿고, 볼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 버릇 속에 갇혀 있다. 땅은 믿고 하늘은 믿지 못한다. 살의 아픔은 잘 느끼면서 얼의 아픔은 느끼지 못한다. 이런 버릇 속에 갇혀서 우리는 살아왔고, 또 갇혀서 살고 있다. 그러나 생각이 자라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씨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은 어렸을 때, 낳기는 엄마가 낳았는데, 성은 왜 아버지의 성을 붙였는지를 모른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슨 뜻이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뜻을 알게 된다. 그렇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울림에서만 생명은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는 버릇 속에 갇혀 있다. 1+2=3이지만, 3이 2의 저쪽에 있는 1을 볼 수 있으려면 생각이 자라야 한다. 하늘과 땅의 어울림으로 사람의 길이 열렸는데도, 사람은 땅에만 기대려고 하는 버릇 속에 갇혀 있다. 이제 우리의 생각은 자라고, 우리의 영혼은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몸에서 영혼을 볼 수 있다. 몸은 육체만이 아니다. 또한 영혼의 집도 아니다. 몸은 사람이다.

지은 것은 집이고, 모은 것은 몸이다. 그러나 집과 몸은 전연 다르다. 흙으로 집을 지었을 때, 흙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 흙은 그대로 흙이다. 바탕은 그대로 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다. 흙과 돌을 모은 것은 흙과 돌의 모음일 뿐 몸이 될 수 없다. 몸은 <모으다→모음→몸>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집은 모음의 단계이다. 품사로도 ‘모음’은 ‘모으다’와 같이 동사이지만 몸은 명사로 바뀌었다. 육체와 영혼을 모은 것이 몸이지만, 몸은 결코 육체와 영혼으로 다시 나눌 수 없는 몸이다. 하늘과 땅의 어울림에서 사람이 나오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울림에서 아기(몸)가 나오고, 육체와 영혼의 어울림에서 몸이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몸에서 땅만을 보고, 어머니만을 보고, 살과 뼈 곧 육체만을 보는 버릇 속에 갇혀 있다. 그 사람 “몸이 좋아졌다”고 하면, 짐승처럼 살이 쪄서 뚱뚱해진 것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살이 찐 짐승을 보고는 몸이 좋아졌다고 하지 않는다. 육체와 영혼의 어울림이 생명의 가락인 리듬을 탔을 때 몸이 좋아진 것이다. 사람의 몸은 집이 아니다. 몸을 마음의 집이라고 할 땐 둘로 나누어서 하는 말이다. 둘로 나눌 때는 이미 몸이 아니다.

그러면 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모은 것이 몸이다. 성경에서는,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했다. 여기서 주어는 하나님이고, 목적어는 흙과 생기(生氣)이다. 흙은 동물과 같은 98.7%의 육체적 요소이고, 생기는 1.3%의 신성(神性)이다. 이 신성(神性)이 곧 영(靈)이고, 얼이며, 마음이고 말씀이다.

사람은 가장 크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눈에 보이는 덩치가 커서 큰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어울림으로 열린 누리이기에 큰 것이다. 이 누리 속에는 흙도 돌도 나무도 풀도 고양이도 종달새도 살고 있으며, 얼과 넋도 하늘처럼 둘려 있다. 이런 어울림이 사람의 길이며, 몸의 길이며, 삶의 길인 것이다. 이런 것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이 어울림에서 벗어나면 사람의 누리는 어울림이 깨진다. 이른바 리듬이 깨진다. 분신(分身)이란 말이 있다. 살을 베어서 나누어 놓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몸에서 살을 베어서 떼어 놓았다면 그것은 분신이 아니라 살 점이나 고기 조각이다. 분신은 또 따른 나의 몸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육체를 몸이라고 생각하지만, 육체(肉體)는 살 육(肉)자와 몸 체(體)자로 구성된 눈에 보이는 몸이고, 영혼(靈魂)은 생기(生氣) 곧 살아 있는 기운이다. 육체에서 살 육(肉)자는 내용이고, 몸 체(體)자는 형식이듯이, 영혼에서도 신령 영(靈)자는 내용이고, 넋 혼(魂)자는 형식이다. 흙이라는 물질이 살이라는 유기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형식적으로는 육체와 영혼을 모은 것이지만, ‘모음’을 넘어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생기(生氣)인 것이다. 여기서 ‘모음’은 ‘모으다’란 동사의 명사형일 뿐 명사가 아니다. 몸은 ‘모으다’란 동사의 열매로 태어난 명사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사람은 ‘살다’란 동사의 열매이고, 주검은 ‘죽다’란 동사의 열매이듯이 말이다. ‘살다’의 열매인 사람과 ‘모으다’의 열매인 몸이 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가 바로 생기(生氣)인 것이다. 그러나 ‘죽다’의 열매인 주검이 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거둬가야 한다.

몸은 육체도 아니며, 영혼의 집도 아니고, 이 둘의 혼합도 아니다. 식물의 광합성으로 맺힌 열매가 물과 빛의 모음이 아니듯이, 몸은 어떤 요소들의 모음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 창조된 유기체이다. 분해할 수도 없으며, 분해하면 생명이 죽는다. 그래서 <1+2=3>이지만 1은 1이고, 2는 2일 뿐이지 결코 3이 아니다. 3이 1과 2의 모음이 아니듯이, 몸은 살과 얼의 모음이 아닌 사람 자체이다. 그래서 몸이란 말은 사람에게만 쓰인다. 다른 동물에겐 몸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돼지나 소를 잘 먹였더니 몸이 좋아졌다고 하지 않는다. 살이 져서 무게가 늘어난 것이지, 몸이 좋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곧 사람이며, 하나님이 지으신 생령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람인 육신도 하늘을 향해 서서 두 발로 걷는다. 네 발로 기어가면 짐승이고, 여러 발로 기어가면 벌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영혼으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을 우리말로는 임금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임금인 것이다.


유승우(본명-유윤식 호-한숲). ‘현대문학’지로 등단(1966년, 박목월 추천). 1939년 강원도 춘성산. 가평 초, 중, 고 졸업. 경희대학교국문과 졸.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문학박사. 인천대학교 교수 역임. 인천시민대학 학장 역임. 인천대학교 명예교수(현).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역임. 사)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사)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현). 사)국제펜한국본부 고문(현). 수상-경희문학상(1988). 후광문학상(1994). 한국기독교문화예술대상(2003). 창조문예문학상(2011). 심연수문학상(2011). 상록수문예대상(2019). 시집-바람변주곡(1975). 나비야 나비야(1979). 그리움 반짝이는 등불 하나 켜 들고(1983). 달빛연구((1993). 물에는 뼈가 없습니다(2010). 숲의나라, 노래와 춤(2019) 등 11권. 저서-한글시론(1983). 몸의 시학(2005) 등 5권. 자서전 『시인 유승우』 출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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