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키높이 구두의 비밀
S예술대학에서 실시하는 무용 강습을 수강하기로 했다. 접수를 받던 담당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예 창작반’에 지원할 것을 잘못 쓴 거 아닌가”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맞게 쓴 거라고 대답하였다. 무용 연습실을 찾아갔다. 안에서는 무용 타이즈를 입은 여성들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발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무용수들이 한 쪽 구석으로 몰려가 피했다. 그 중에 용감한 무용수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 찾으러 오셨나요?” “무용 강습 받으러 왔는데요.” “무용 타이즈는 있으세요?” “그걸 입으면 아랫쪽이 불편해서요.”
그리하여 반바지를 입고 고전 무용과 현대 무용, 에어로빅 댄스와 탈춤을을 배웠다. 담당 교수는 강습이 끝나갈 즈음에 나에게 말하였다. 무용에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니 당신에게 개인 교습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당장 눈 앞의 노총각 신세를 면하는 게 급선무였다.
드디어 나의 무용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여성 앞에서 남자로서의 당당함을 선보이는 나의 무용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경아와 맞선을 본 후 곧바로 나이트클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40여 일 후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나의 결혼 전략이 성공한 것 같아 남모르게 쾌재를 불렀다. ‘무용 배우기를 참 잘 하였다. 총각 딱지를 떼게 되었으니 이제 됐다.’
신혼 여행을 바닷가로 갔다. 그토록 원하던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이제 신혼의 단꿈만 구면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호텔 방에 들어서니 갑자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저 아래서 메아리 같이 가냘픈 경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깄는데.” 웬 키 작은 여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경아는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동안 선 보았던 키 작은 여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중엔 키만 작았을 뿐 얼굴이 팬지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도 있었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나의 당당함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결혼을 물릴 수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이혼은 턱도 없는 소리였다. 비도 오지 않는데, 눈에서는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떡허냐?’ 그 옛날 어른들이 소박맞고 친정에 돌아온 딸들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 날 따라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곧이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파도 소리가 비에 묻혀 갔다.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키높이 구두의 비밀
S예술대학에서 실시하는 무용 강습을 수강하기로 했다. 접수를 받던 담당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예 창작반’에 지원할 것을 잘못 쓴 거 아닌가”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맞게 쓴 거라고 대답하였다. 무용 연습실을 찾아갔다. 안에서는 무용 타이즈를 입은 여성들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발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무용수들이 한 쪽 구석으로 몰려가 피했다. 그 중에 용감한 무용수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 찾으러 오셨나요?” “무용 강습 받으러 왔는데요.” “무용 타이즈는 있으세요?” “그걸 입으면 아랫쪽이 불편해서요.”
그리하여 반바지를 입고 고전 무용과 현대 무용, 에어로빅 댄스와 탈춤을을 배웠다. 담당 교수는 강습이 끝나갈 즈음에 나에게 말하였다. 무용에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니 당신에게 개인 교습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당장 눈 앞의 노총각 신세를 면하는 게 급선무였다.
드디어 나의 무용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여성 앞에서 남자로서의 당당함을 선보이는 나의 무용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경아와 맞선을 본 후 곧바로 나이트클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40여 일 후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나의 결혼 전략이 성공한 것 같아 남모르게 쾌재를 불렀다. ‘무용 배우기를 참 잘 하였다. 총각 딱지를 떼게 되었으니 이제 됐다.’
신혼 여행을 바닷가로 갔다. 그토록 원하던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이제 신혼의 단꿈만 구면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호텔 방에 들어서니 갑자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저 아래서 메아리 같이 가냘픈 경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깄는데.” 웬 키 작은 여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경아는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동안 선 보았던 키 작은 여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중엔 키만 작았을 뿐 얼굴이 팬지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도 있었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나의 당당함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결혼을 물릴 수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이혼은 턱도 없는 소리였다. 비도 오지 않는데, 눈에서는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떡허냐?’ 그 옛날 어른들이 소박맞고 친정에 돌아온 딸들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 날 따라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곧이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파도 소리가 비에 묻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