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푸른 청바지

2022-05-09

정신재(시인․문학평론가)


내 마음의 푸른 청바지

 

한낮의 햇살이 따가웠다. 더위 치고는 꽤나 심한 무더위였다. 병태가 B캠퍼스로 가는 언덕을 오르는데,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놈의 순이네만 아니었어도…’

순이는 병태와 동갑내기의 옆집 처녀였다. 요즘 들어 강선생이 그녀에게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순이 엄마가 어머니에게 귀띔한 것부터가 수상했다. 강선생은 건너편 달동네에서 초등학생을 상대로 과외를 해서 돈도 꽤 번 얼굴이 잘 생긴 청년이었다. 어머니는 속으로 순이를 장차 병태의 며느리감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순이 엄마가 건너편 달동네에서 급매로 나온 집이 있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선뜻 그 집을 사고 말았다. 그 집을 구입한 매입 자금은 42년간 교직 생활을 한 아버지의 퇴직금이었다. 근데 그 집을 매입하여 6개월이 지났을 때 사단이 나고 말았다. 달동네의 땅들이 시유지라면 20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 정부가 불하해 주는데, 대법원에서 그 땅이 이승만 대통령이 B학당에 불하한 땅이라고 판결이 나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그 집을 B학당으로부터 다시 매입해야 했다. 이러저러한 궁리 끝에 어머니는 그 땅을 세입자에게 헐값에 넘겨 버렸다. 그리하여 병태네 집은 순이네 집과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 형편에 병태의 누나는 이를 악물고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러 출국해야 했다. 그런 형편을 안 병태는 변변한 옷 하나 제대로 사 입을 수가 없었다.

누나가 출국한 지 1년 후 선물이 하나 집에 배달되었다. 그것은 서양 청년들이 즐겨 입는다는 청바지였다. 그러나 집에 배달된 청바지는 여성용이었다. 여성용은 남성용보다 가랑이가 2.5인치 더 올라가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병태가 입기에는 가랑이 그 부분이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병태는 그 청바지를 꿰차고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병태는 그 청바지를 입어야 했다. 아랫도리 그 부분이 매우 아팠다. 날씨까지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청바지 한 벌로 대학 4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노오랗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