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맛

2021-11-08

최원현/수필가⋅문학평론가⋅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그리움의 맛


똑다리라는 말이 참 정겹다. 그래서일까. 똑다리 찌개라는 것도 아주 맛이 있을 것 같다. 똑다리 찌개, 들어가 먹어보고 싶어졌다.

새벽 예배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똑다리 찌개를 먹기로 했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차 댈 곳이 없다. 한데 더 놀라운 것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찌개가 앞에 놓인다. 하기야 메뉴가 한 가지 뿐이니 주문이란 걸 할 필요도 없다. 익은 김치 사이로 돼지고기 살점이 살짝살짝 보이는 김이 나는 찌개 앞에서 나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킨다.

약간 신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 맛은 내가 좋아할만한 것이었다. 옛날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다. 나는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내 밥을 다 먹고 아내의 남은 밥까지도 먹었다.

어쩌다 그 앞을 지나칠 때면 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밥을 먹은 뒤이거나 갈 길이 바빠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교회 친구와 그곳엘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이 단골이란다. 아주 자주 온단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의 먹는 것을 보더니 찌개 먹을 줄을 모른다고 했다. 무슨 찌개 먹는 방법도 따로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를 보란다. 그는 앞에 놓인 콩나물 통에서 콩나물을 김치찌개 그릇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가위로 그것을 아주 잘게 잘랐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란다. 그러고는 한 번 맛을 보란다. 맞다. 이전에 먹었던 맛이 아니다. 전에 먹었을 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의 맛 그것이었는데 콩나물을 듬뿍 넣자 국물 맛이 달라졌다.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 되었고 콩나물 특유의 맛이 강한 김치 맛을 중화시켜 새로운 맛을 내고 있었다. 훨씬 맛있게 먹었다. 콩나물 통을 보고도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 먹으라는 것으로만 알았지 이렇게 넣어 먹으라는 것인 줄은 몰랐었다.

비로소 벽에 걸린 똑다리 찌개에 대한 설명문에 눈이 갔다.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이 거기 있었다.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시원한 김칫독(항아리)에 돼지고기를 숙성시켜 끓여먹었단다.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여름철에도 탈이 없고 시원하여 식욕을 돋우고 소화도 잘 되는 찌개 맛을 어머니에게서 손맛 그대로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김칫독의 독과 돼지 다리고기의 다리에서 따 ‘독다리 찌개’라 했는데 억양의 변화로 ‘똑다리 찌개’가 되었다고 한다.

똑다리 찌개는 바로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없던 때에 선조들이 돋보이는 지혜로 창안해 낸 음식 저장과 만드는 방법인 셈이다. 원래 돼지고기와 김치는 음식궁합이 맞는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땅속에 묻은 김칫독을 열면 시원한 냉기가 올라오는 걸 보면서 거기에 돼지고기를 함께 넣어 두면 변질되지 않고 잘 보존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해 보았더니 생각대로 변질도 안 될 뿐 아니라 돼지고기에 김치 맛이 배이고 김치에는 돼지고기 맛이 배인 것을 꺼내다 함께 끓였더니 그 맛이 금상첨화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전해져 온 방법을 지금의 음식점 사장이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손님에게 내놓았더니 대박이 나 지금은 여러 곳에 지점을 둔 거대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찌개 맛도 내 입맛에 잘 맞지만 똑다리 찌개라는 그 말이 더욱 입맛을 당기는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집 옆엔 아주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다. 수로(水路) 뚜껑이기도 한 다리였다. 비가 오면 그 다리 밑에서 우린 고기를 잡곤 했다. 그 다리 이름이 똑다리였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고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따로 뚝 떨어져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내 눈이 ‘똑다리’라는 이름에 쉽게 꽂혔던 것도 아마 어렸을 때의 그 다리 이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겐 두 이름이 다 정겹다.

방학이 되어 내려가면 할머니가 끓여주시곤 하던 김치찌개의 맛과 어릴 때 정겹게 함께 하던 똑다리의 추억이 함께 어우러지니 그리움에 온 몸이 떨려온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도 이 찌개집 어머니가 전수해 주었다는 그 방법으로 저장했다 찌개를 끓였을 것 같다.

시원한 기운이 나오는 김칫독을 열고 김치물이 든 돼지고기를 꺼내다 숭숭 썰어 김치와 끓이는 할머니 모습이 생시인 양 눈앞에 펼쳐진다.

똑다리 찌개, 내 어린 날의 추억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득 내일 아침엔 꼭 아내와 그곳엘 다시 가야겠다. 그리고 콩나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내일은 그냥 김치와 돼지고기만의 할머니 찌개 맛 그대로를 봐야겠다. 가신지 스무 해가 넘었어도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할머니의 그 손맛과도 만나고 어린 날의 추억도 살아나게 할 그리움의 그 맛을.

 

최원현 nulsaem@hanmail.net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월간 한국수필 발행 겸 편집인.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현석김병규수필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외,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누름돌》등 17권, 문학평론집《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 중학교《국어1》《도덕2》등에 수필 작품이 고등학교 《국어1》《문학 상》등에 수필 이론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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