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신 선물, 열정

2022-02-15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당신이 주신 선물, 열정

 

동지가 지나자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달도 거센 눈보라에 막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귀신 울음 소리를 내고 지나가고,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엄습하였다.

‘오늘 같은 날, 아내를 만나러 가야 하나?’

우린 주말 부부라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만나게 되어 있다. 한 주는 내가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Y시에 갔고, 그 다음 주는 아내가 내가 있는 서울에 왔다. 근 4년 동안 정릉 근처의 신혼 살림집에서 오붓하게 살다가, 아내가 한 2년 정도는 외지에 근무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해서 따로 살게 되었다.

근데 그 날 따라 아내가 보고 싶었다. 혼자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간드러지게 불러도 보고, 걸작을 만드려는 욕심에 대학 노트에 습작시도 끄적거려 보았다. 하지만 눈 앞에선 아내의 계란형 얼굴에 예쁜 쌍커풀 눈이 자꾸만 떠올랐다. 순간 가슴 한 켠에 한 웅큼의 그리움이 파도처럼 흘러갔다. 창밖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귀신 울음같은 바람 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내가 미쳤나? 이런 사나운 날씨에 길도 미끄러울텐데 어딜 간다고 그래?’

혼자서 몇 번이나 되뇌어도 벌써 손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있다. 중부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눈발이 더욱 거세지며, 차가 옆으로 밀려날 듯이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하지만 이왕 내디딘 발길을 어찌 돌릴 수 있으랴. 눈발이 사납게 차창에 들러붙어, 와이퍼를 세게 돌리며 히터도 창문쪽으로 세게 틀었다. Y시는 강원도에 있어서 눈이 두텁게 쌓인 곳도 많았다. 하지만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차의 속도는 120킬로미터를 넘어서곤 했다. ‘이러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길바닥에 희끄무레한 빙판에 밀려 차가 심하게 미끄러지기도 했다. 사선을 넘는다는 말이 이런 데 적용되나 싶었다. 그래도 아내한테 칭찬받을 생각에 가슴은 쿵덕쿵덕 뛰었다.

그리하여 아내가 기숙하고 있는 숙소에 가서 아내를 호출하였다. 근데 예상 외로 아내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니, 날씨가 이렇게 사나운데 미쳤다고 여기를 와. 사흘 후면 집에 갈 건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당신이 애초에 나를 만들 때부터 열정을 주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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