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게 해주셔서 감사

2022-03-21

 

오경자 (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빚 갚게 해주셔서 감사


우쿠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특별 헌금을 2주간에 걸쳐서 하기로 했다는 목사님 말씀에 새삼스럽게 말도 안 되는 전쟁의 도발자 푸틴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스탈린의 얼굴이 겹쳐지나가며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갑자기 38선을 넘어 밀고 내려온 북의 만행 뒤에 음험하게 서 있는 스탈린, 어찌 그날을 잊으랴. 3년의 전쟁으로 집을 잃고 피난길에 내몰린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따뜻한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몸을 가렸다. 이번에 그 빚을 아주 조금이라도 갚게 돼서 기쁘다. 보통 때의 재난들에 대한 특별 헌금 때 보다 많은 헌금을 하기로 하고 봉투를 찾는다.

우리가 어디 그 빚뿐인가?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해외 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 또한 잘 하고 있는 일이다.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하나님 잘 믿는 것으로 대신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 쉬운 것조차 제대로 못하고 산다. 어디 그 뿐인가? 서로 사랑하라셨는데 사랑 보다 미움이 훨씬 하기 수월하니 이아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주변의 것만 사랑한다. 자식, 가족, 친한 친구 등 말이다. 아니 그들이라도 제대로 잘 사랑하고 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도 제대로 못해서 가정을 깨뜨리고 문제를 일으키니 그것이 더 문제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렇게하 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면 나 다음으로는 사랑할 수 있을테니 열심히 따라해 볼 일이다.

옥수수 가루를 보내 주고 우유가루를 보내 주어 그것으로 죽을 쑤어 먹고 연명했다.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 가마솥에 그 가루 죽을 쑤느라 주걱으로 계속 젓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단체 역사책에 기록한 여성단체들의 기록물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서 처음 본 종이 드럼통에 담겨온 탈지분유 가루는 밥에 쪄서 도시락 대신 점심으로 싸들고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앉아 북침이 어떻고 하는 넋빠진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구 소련의 외교문서 공개에서 다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속셈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민은 또 그 아픔을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고금동서의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걱정이 엎서서 하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모습 속에 그 때 나 만 한 아이도 있고 엄마 만 한 여인도 있다. 그 전쟁으로 아버지를 북에 앗긴 나 같은 아이가 저들에게서는 생기기 전에 전쟁은 끝나야 한다.

전쟁 중 민간인 납치가 가장 무거운 전쟁범죄인데 북은 오늘까지 그 만행을 자신들은 아니라고 뻔뻔힌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0만명이상을 잡아가 놓고서 말이다. 70년이 더 지난 묵은 상처가 생살처럼 아프다. 그래 감사한다. 그 때 빚을 갚을 수 있게 조금이라도 헌금할 돈이 내게 있음에 감사드린다. 우리가 받은 물건들은 이루 다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광목, 담요, 각종 구호물자라는 이름의 옷가지와 일용품들 학용품, 의료품, 먹을거리 등등 .

우리는 그 구호물자를 통해 서양을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터, 치즈, 치약, 커피, 우유, 각종 과자, 초콜릿, 양질의 크레용, 갖가지 인형들, 양장 옷, 여성 속옷 란제리 종류들, 구두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다양하게도 구호물자를 보내왔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으로 알고 열심히 구제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그냥 잊고 살았다 함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정신이 들어 조금이나마 빚을 갚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의 구호 손길은 우리가 휴전을 하고 난 이후에도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대학시절에도 동대문시장의 구제품 시장인 존슨 시장에서 옷가지들을 사다 입었으니 말이다. 구제품 덕택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복에서 양장식 옷으로 일상복을 일찍 바꾸게 되었다. 편리함만 쫓다가 이제 우리도 여유가 생겨 우리 전통 문화의 보존에 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 됐으니 오로지 감사할 일 뿐이다.

전쟁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죄악이다. 우크라이나가 하루 빨리 평화를 되찾게 되기 바란다. 언제나 지구촌이 전쟁과 분열 없이 평화로운 날이 오려나? 기도, 기도에 답이 있다.

 

2022.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