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권총

2022-02-28

 정 신 재(시인·평론가)


그녀의 권총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다 한 번씩 갔다오는 군대에 가지 못하였다. 그것은 내가 신체적으로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는 총각 시절에 늘 콤플렉스로 작용하였다. 내가 K를 만나 호감을 가지게 된 것도 순전히 내가 군대를 갔다오지 못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간호 장교였던 K는 나의 이러한 콤플렉스를 익히 알고 있었는지, 그녀의 사무실에 데려가 나에게 권총을 보여 주었다. K는 손바닥보다 큰 갈색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보이더니, 날더러 만져 보라 하였다. K는 권총을 꺼내어 나에게 만져 보라 하였다. 가냘퍼 보였던 K가 멋있어 보인 것은 순전히 그 권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K를 결혼 상대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총각 시절에 평론집도 한 권 낼 만큼 평론가로 등단해 있었고, 장차 실력있는 인문학자가 되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여자는 눈에 차지 않았었다.

그런데 햇볕이 길게 느티나무를 내리쬐는 어느 날 K가 운전병이 모는 포니2를 타고 직장 앞에 와서 혼인 신고서를 내밀었다. 더구나 머리 캡에서부터 구두까지 하얀 간호 장교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직장 현관 앞에서 그녀가 차에서 내려 혼인 신고서를 내밀었을 때, ‘뜬금없이 무슨 혼인 신고서야’라며 의아한 빛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K가 “나는 도장을 다 찍었으니, S씨도 찍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뜨끔하였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저토록 강하게 나오는 것은 훗날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며칠 전에 그녀의 사무실에서 권총까지 보여 주지 않았는가. 더구나 신군부 권력이 판을 치던 때라 자칫 군인을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큰 일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큰 일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맞선을 본 지 40일 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허나 신혼 생활이 만만하지가 않았다. 총각 때의 습관대로 식사를 하고 나면 아랫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곤 하는데, 부엌 일을 하던 아내가 쏜살같이 들어와 말하였다.

“당신 TV 볼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 봐욧.”

나아가 서서히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K에게 거의 잡혀지내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짝이라 생각하고 38년을 함께 살아옴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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