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이야기-26

2021-09-27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아사

 

유다 왕국에서 르호보암이 17년을 다스린 후 그 아들 아비야(913-911 B.C.)가 다스렸다. 아비야가 죽은 후 아사(911-870 B.C.)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아사는 왕위에 올라 41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다. 아사는 두 번에 걸친 큰 전쟁을 치렀다.

하나는 구스(에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지도하던 애굽 및 구스군과의 전쟁이었다. 그때 세라의 군대는 군사가 100만이요, 병거가 300승이었다. 그때 아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대하 14:11) 세라의 군대를 크게 이겼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과의 전쟁이었다. 아사 왕 16년(대하 16:1)에 바아사 왕이 유다를 공격해 왔다(대하 16:1). 바아사는 베냐민 땅 라마를 점령하고 거기에 성을 건축하고 백성들이 유다 왕 아사에게 연락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대하 16:1). 라마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유다 왕 아사는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다메섹(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 왕국을 북쪽에서 공격하도록 뇌물을 보냈다. 이때 다메섹은 이스라엘을 약하게 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의 바아사는 북방의 도성들을 방비하기 위하여 유다 왕국과의 접경지대인 라마에서 철군하였다. 그러자 아사는 이스라엘 왕국에서 라마 성을 건축하던 모든 자재들을 가지고 와서 게바와 미스바 두 성을 건축하였다(대하 16:6). 유다 왕 아사는 자신의 정책이 매우 지혜로웠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 하나니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였을 때 아사는 크게 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하나니가 그를 책망한 이유는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여 후에 왕이 아람 왕의 군대를 손아귀에 넣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대하 16:7).

아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였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 분쟁에서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않고 세상 나라의 이치를 활용하였다. 이는 세상의 이치로는 약삭빠른 듯이 보였으나, 유다가 이스라엘은 물론 다메섹까지 아우르는 영토 확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하나님의 의를 따랐더라면 후에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