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아는 사람

2021-02-01

<칼럼>


               자신을 아는 사람

                  전종문(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


 

  역주행하는 사람이 자기가 바르게 가고 있다고 믿으면 정말 바르게 가는 사람이 모두 잘못 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알아야 남을 이해할 수 있다.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항상 남의 잘못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닦는데 힘을 쓴다. 성경을 비롯하여 위대한 경전들은 그러므로 자신을 먼저 닦아야 한다고 교훈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제 눈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 남의 눈의 티를 보고 비난하는 것이다. 자기를 바로 알면 남을 함부로 폄하하지 못한다. 자기가 아름다운 마음이면 그가 보는 모든 세계가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그가 보는 모든 세계가 비난과 불평거리가 된다. 성경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고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고 했다.(딛1:15)

 그렇다. 우리는 남을  책하기 전에 자신을 책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을 보자. 삼척동자도 그것은 잘못이라고 아는데 자기만 아니라고 우겨댄다. 이것은 그가 양심이 더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역주행하면서 자기가 바르게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고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고백하도록 하고 있다. 진부한 얘기가 됐지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명언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얻는 길이고 인생을 바르게 사는 비결을 터득하는 기본이다. 세상엔 자기도 모르면서 남에 대하여 아는 체하려 들고 교훈을 주려하는 사람이 있다. 

가소로운 일이다. 자기 앞가름도 못하면서 남에 대하여 충고하려 든다. 누가 그런 사람의 충고를 들으려 하겠는가. 흔히 말하는 “너나 잘해라.”고 할 것이다.

 

  바둑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가르친다. 남을 공격하기에 앞서 나부터 살피라는 뜻이다. 자기 집도 다 짓지 못하고 남을 공격하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작은 일도 못할 위인이 큰일 하겠다고 나서서 자신도 망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른 사람이 그런 결과를 보고 나면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위대함 앞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다.(눅5:8) 자기를 안 것이다. 주님은 그를 제자로 삼았다. 바울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안하무인으로 살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자신이 지난날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노라고 고백했다.(딤전1:12) 자신은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을 알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복음 전파자로 사용 되었다. 그는 자기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충성할 수 있었다. 모세도 마찬가지다. 애굽 궁중에서 살다가 살인죄를 범하고 미디안으로 도망쳐 장인 이드로의 식객이 되었다. 


거기서 양치기 노릇 40년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라는 사명을 맡기자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하고 자기 무능을 고했다.(출4:13)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를 아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진실로 자신을 바르게 아는 사람만이 남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알고 그 사람이 세상을 헌신의 정신으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