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여호와, 엘로힘, 그 이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 영 선 (한신대 명예교수)


야훼, 여호와, 엘로힘, 그 이름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약성경에 신의 이름이 직접 언급될 때는 주로 야훼(YHWH)와 엘로힘(Elohim)이 사용되는데, 야훼가 약 6,700회, 엘로힘이 약 2,500회 등장한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출애굽 사건 이전까지 고대 사회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엘(El) 이라는 최고신을 섬기고 있었으며, 그 신의 이름이 ‘엘로힘’(Elohim)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성경에는 ‘엘 샤다이’ (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출 6:3), ‘엘 엘리욘’ (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14:19), ‘엘 로이’ (El Roi,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16:13) 등 ‘엘’ 이 들어간 다양한 호칭들이 나온다. 그것은 ‘이스라엘’(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스마엘’(하나님이여 들어주소서) ‘벧엘’(하나님의 집) 등 사람의 이름과 지명에서 그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 담겨져 있는 데서도 증명된다. 최고신에 대한 이런 호칭들은 우리의 옛 조상들이 ‘천지신명’, ‘한울님’, ‘하늘님’을 최고신으로 섬겼던 것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엘로힘은 야훼라는 신명(神名)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이 엘 신을 폐기하고 야훼 신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엘이 야훼 안으로 통전적으로 교체되었던 것이다.

 

‘야훼’라는 이름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하나님(Elohim)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ehyeh 'asher 'ehyeh.....)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타나신 조상의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자 하나님은 그에게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대답하셨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는 나다.”(공동번역)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개역)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표준새번역)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I am who I am” 또는 “I will be who I will be”로 번역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대답은 자신의 본질과 역할을 암시하는 매우 중요한 대답이다.

우리말의 ‘야훼’ 또는 ‘여호와’로 표기되는 이름은 본래 ‘에흐예’(‘ehyeh)로 발음되는 히브리어인데, 원래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었다. 자음만 붙여 써놓으면 모음은 사람들이 알아서 붙여 발음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자음 네 글자를 영어알파벳으로 포기하면 Y(위) H(ㅎ) W(우) H(ㅎ)가 된다. 유대인들은 이 이름에 맞는 모음을 붙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고민하던 중에 ‘주님’ 또는 ‘주인’이라는 뜻을 지닌 ‘아도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이 단어 역시 네 글자로 되어 있는데, 거기서 모음만 따오면 아 오 아 이가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네 개의 자음에다 아도나이에서 따온 네게의 모음을 붙여 읽다 보니 ‘야훼’ 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온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야훼’와 ‘여호와’는 서로 다른 신의 이름이 아니라, 발음이 다른 두 가지 표기 방식 때문에 생겨난 이름들이다.

구약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야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어근 ‘하야’(hyh/HaYaH)에서 파생되었으며, 그 동사의 본래적 의미는 떨어지다(fall), 생기다(befall), 되다(become), 생존하다(be, exist) 등이라고 한다. 따라서 히브리어 문법구조로 봐서 야훼라는 이름은 미완료 동사형이라는 것이다. 즉 본질개념이 아니라 현상적∙기능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야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사역과 역할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 자주 사용하셨던 말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 에서 잘 드러난다. 즉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살아 활동하시는 분이며, 약한 자를 변호하시고 억눌린 자를 해방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다른 한편,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나다.”(공동번역) 라고 대답하신 것은 사실상 이름 주시기를 거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대 근동지역의 모든 신들은 각각의 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바알신, 아세라신, 몰록신, 다곤신, 그모스신 등등, 모든 신들은 한 결 같이 각각의 이름과 모양을 갖고 있었으며, 모양은 주로 괴물이나 짐승의 형상이었다고 한다. 모세는 그런 선험적(先驗的) 신관(神觀)을 가지고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한국의 무속에서는 무당이 신내림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모시는 몸주신의 이름을 받게 되고, 환상 중에 그 신의 모양도 보게 된다. 한국의 무당들이 모시는 몸주신으로는 주로 장군신과 조상신이 많은데, 그 신의 모양을 그린 무신도(巫神圖)를 신당에 걸어둔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모든 종교의 신들과 달리 이름도 모양도 없는 분이다. 거룩하신 초월자 하나님을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결국 그분을 피조물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엄명하셨던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과 모양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의 인식능력과 지식범주 안에서 신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될 때 그 신은 인간의 지식범주와 인식능력을 초월할 수 없는 하찮은 신이 된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신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장에 “이름 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라는 말이 있듯이, 유일무이한 절대자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는가?

이처럼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이름이 없고(No Name), 모양이 없고(No Image), 신화가 없고(No Myth), 성이 없는(No Sex) 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편의상 그 분을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불렀으며, 포로 후기부터는 야훼 대신 ’주님‘(아도나이)으로 불렀다. 하나님을 ‘아도나이‘(주님)라는 대명사로 부른 것은 십계명에서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20:7)는 엄명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그 초월자 하나님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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