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열심에 빠진 교인들

          오세준목사


가짜 열심에 빠진 교인들

 

“십일조도 안 하고 예배를 자주 빠져서야 어떻게 복을 받나요? 철저하게 주일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도 하고 새벽기도도 잘하세요. 그래야만 하나님이 복 주실 것 아닙니까? 복 받을 일 해야 복을 받지요”라는 식으로 설교하는 목회자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어느 교인이 십일조 잘해서 복 받았다느니 주일성수 잘해서 복 받았다느니 하면서 감성을 터치하는 스토리텔링으로 교인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설교자들도 있다.

교인들은 이런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면서 좋아한다. 열심을 내서 예배 참석도 잘하고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도 잘할 뿐 아니라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열심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듣고 열심 내는 게 진짜 열심일까? 이런 열심이라면 가짜 열심이다.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은혜받고 좋아서 열심 내는데 가짜 열심이라고 폄훼하면 되냐고 힐난할지 모른다.

무엇을 잘해야 복을 받는다는 말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이란 한 일이 없어도 공로나 자격이 안 되어도 호의를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가장 크고 놀라운 복을 은혜로 값없이 주셨다.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아니했어도, 예배 한번 드린 적이 없어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거저 주셨다. 그런데 헌금이나 예배, 봉사로 공로를 쌓아서 복을 받으라고 하니 복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천억 원의 가치가 있는 금은보화를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값없이 공짜로 주셨다고 가정하자. 그런 하나님이 천 원, 만 원짜리 물건을 돈 내고 사라고 하실까? 만약 그렇다면 우스운 하나님이 되신다. 수천억 원 상당의 금은보화를 공짜로 주신 분이 만원의 가치도 안 되는 물건을 돈 주고 사라 하면 이치에 맞는가? 헌금 잘하고, 예배, 봉사 잘하면 복을 받는다는 논리는 이런 얘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바로 한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구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값이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 자체가 우매한 질문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값은 예수님의 목숨값인데 어떤 가치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로 구원받은 사람은 큰 복을 받은 것이다. 이 큰 복을 어떤 값을 지불하고 받은 게 아니라 은혜로, 값없이 받았다.

많은 교회에서 강조하는 복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세상에서 잘되는 것으로 주로 부자 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이러한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교인이 의외로 많다.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잘 되고 부자 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이용해서 교인의 열심을 끌어낸다는 데 있다. 어찌 되었든 열심 내서 신앙생활 하면 교회도 좋고 서로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만 내면 좋다는 논리는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유대인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한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다고 유대인의 그릇된 열심에 대해 지적했다(롬10:2~3).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말은 은혜의 복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복음을 모르는데 열심을 냈다. 유대인은 율법적인 열심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이런 열심은 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과 같다. 이 또한 자기 의로 복을 받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복음을 깨닫고 이에 대한 반응에서 열심 내는 것을 누가 나쁘다고 하겠는가? 이런 열심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복 받기 위해 율법의 행위를 하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를 의지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며,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율법을 이루신 구원 사역을 부정하는 무서운 죄이다. 그런데도 그 동기가 어떠하든지 무조건 열심만 내면 좋다는 논리는 기독교를 이교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복을 받으려면 열심히 하라고 선동적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많다.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살아나려면 참 복음이 증거되어 세상 복을 받기 위해 열심 내는 가짜 열심이 사라져야 한다. 은혜의 복음을 깨달으면 주를 위해 열심 내지 말라고 해도 열심을 낸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 건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지 않았는가? 이들은 세상 복을 받기 위해 이런 열심을 낸 게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으로 열심을 낸 것이다. 진짜 열심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