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같은 의지 끝으로 솟아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보아야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강철 같은 의지 끝으로 솟아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보아야


“강철 같은 의지 끝으로 솟아오른 무지개를 바라보아야”라는 제목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해서 맞서다가 순직한 시인 육사 이원록의 “절정”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에서 암시 받은 시구다. “절정”은, 서상한 바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고통과 시련 속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시’로서, 1940년에『문장』지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절정” 전문

제1연에서는 일제의 폭압적인 채찍에 휘둘려 북방 만주로 쫓겨 오는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제2연에서는 갈수록 점진적으로 심해지는 비참한 극한 상황을, ‘북방’, ‘고원’, ‘서릿발 같은 칼날’ 이미지로써 형상화해주고 있다. 제3연에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한발 내디딜 곳조차 없는 화자의 암담한 심리가 함축되어 있고, 마지막 4연에는 극한 상황을 초극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는 데, 그것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말로 표현된다. 결국 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 어떤 외부적 힘에 ‘무릎을 꿇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어떻게 하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자신의 의지로 견뎌낼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이렇게 사색적인 탐색을 하는 동안, 화자는 겨울을 차고 싸늘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다보게 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런 역설적인 순간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 한다. 강철은 아주 차가운 금속의 이미지다. 거기에 무지개라는 황홀한 이미지를 결합시켜서 비극과 황홀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화자의 관조적인 자세 속에는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육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절정은 일제 강점기, 민족 수난을 주제로 하는 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일상을 일컬어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라고 할 정도로 코로나 펜데믹에 사로잡혀 있고, 국제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공황에 버금가는 극한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고통과 어려운 상황을 표상하는 겨울은 다가온다. 미래의 겨울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겨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모질고 매서울 수가 있다. 국내 사정도 모든 면에서 만만치가 않다. 아침이 온 것 같은데 여전히 흐릿하고 희미하기만 하다. 그래도 강철로 된 겨울처럼 어둡고 차고 매서운 하늘에 별은 한결같이 뜬다. 김연수의『달로 간 코미디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ㆍㆍㆍ시각 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여야만 존재한다고 믿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는 무용지물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 우리는 교통 안내판을 보지 않게 되었다. 주로 내비게이션이나 휴대 전화 속 지도를 통해 낮선 곳을 안내받는다. 안내하는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지만,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면 늘 그렇듯 쓸쓸해진다.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예기치 않았던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존재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내판 같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그가 지시하는 길을 따라 나가면 어떠랴.

2001년 노르웨이 교사였던 리브 아르네센 은 사십 대 중반에 남극 탐험을 결심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것이 리브 아르네센의 강철 같은 무지개였다. 특히 어린 시절 학습 장애를 극복한 앤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방법을 궁리한 끝에 남극 횡단 여행을 인터넷에 올려 탐험 경로를 볼 수 있게 했다. 116개국 3만 명의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동참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그는 포기할까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끝내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것이다. 강철로 된 무지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던 길에 머물면 새로운 길이 열리질 않는다. 틀에 박힌 고정된 길을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길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샛길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