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준목사
거짓 능력과 참 능력을 분별하라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중형 교회 목회자가 기도원에 간다고 교회에 광고하고는 놀다 온다고 한다. 노래방에 다니면서 노는데 얼마나 노래를 많이 부르는지 목이 다 쉰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설교하면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쉬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쉰 목소리로 가성을 내면 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쇼하는지 진실하게 하는지 구별을 잘 못 할 때가 많다. 걸걸한 목소리로 가성을 쓰면서 신령한 흉내를 내면 영적인 목회자라고 한다. 평소 쓰는 목소리로 평이하게 소리를 내면 영적이라고 잘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더 위협적인 현상은 실제로 신비한 능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병자도 낫고, 기적이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것이 더 위협적일까?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면 열이면 열, 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의 설교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추앙한다. 능력이 나타나는 목회자라서 의심의 여지 없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빨아들인다. 능력을 행사하는 목회자라면 그 입에서 반 복음을 말해도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참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도 괘념치 않는다. 왜냐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하나님의 참 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악한 자가 나타나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한다고 경고한다(살후2:9). 악한 자란 거짓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거짓 목회자다. 이들이 모든 능력, 표적, 거짓 기적을 행한다는 것이다. 거짓 기적이란 ‘사기’ ‘속임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기적을 행하여 사기 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기를 친다는 말이다. 사탄의 능력을 통해 나타나는 기적인데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둔갑시켜 사기를 친다. 그러니 여기에 속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열이면 열, 다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거짓 능력과 참 하나님의 능력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분별이 쉽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거짓 능력은 사탄의 능력인데 하나님의 능력과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분별하기가 어렵다. 분별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참 복음을 아는 성도라면 분별할 수 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먼저,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서 참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기복적이고 율법적이거나 신비주의로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부분을 잘 분별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능력과 신비한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참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만약에 “병 고치려면 하나님께 소원 예물을 드려라, 그래야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라고 하면서 기도를 받을 때마다 헌금 봉투에 두둑이 돈을 넣어 바쳐야 기도해준다면 가짜가 분명하다. 헌금해야 병 고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전형적인 기복 신앙, 무속신앙의 산물이다. 복음은 값없이 거저 주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이 헌금을 많이 하고 지성을 드려서 낫는 것이 아니다. 은혜(믿음)로 낫는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상투적으로 잘 써먹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계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내세워 헌금을 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수법이 있다. 하나는 “000의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이 크게 사업에 복을 주신다고 계시로 보여주셨다.”라는 수법이다. 이런 수법은 사람의 기분을 띄우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수법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담임목사 자가용을 사라고 하셨다. 순종하지 않으면 큰 환난이 닥쳐서 재산상의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다.”라는 수법으로 접근한다. 이런 것은 은혜의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수법이다. 그런데 우매한 교인들은 이런 미혹에 잘 넘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우상화하는지 봐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높이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교인들이 높이고 있다. 그러면 그 높임을 거부하지 않고 받고 있다. 이렇듯 아무리 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해도 자신을 높이는 자라면 거짓 종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영광을 받고 있으면 참된 주의 종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거짓 목사들이 행하는 큰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 그러므로 사탄의 능력인지, 하나님의 능력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 분별의 시금석은 복음의 말씀이다.
오세준목사
거짓 능력과 참 능력을 분별하라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중형 교회 목회자가 기도원에 간다고 교회에 광고하고는 놀다 온다고 한다. 노래방에 다니면서 노는데 얼마나 노래를 많이 부르는지 목이 다 쉰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설교하면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쉬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쉰 목소리로 가성을 내면 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쇼하는지 진실하게 하는지 구별을 잘 못 할 때가 많다. 걸걸한 목소리로 가성을 쓰면서 신령한 흉내를 내면 영적인 목회자라고 한다. 평소 쓰는 목소리로 평이하게 소리를 내면 영적이라고 잘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더 위협적인 현상은 실제로 신비한 능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병자도 낫고, 기적이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것이 더 위협적일까?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면 열이면 열, 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의 설교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추앙한다. 능력이 나타나는 목회자라서 의심의 여지 없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빨아들인다. 능력을 행사하는 목회자라면 그 입에서 반 복음을 말해도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참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도 괘념치 않는다. 왜냐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하나님의 참 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악한 자가 나타나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한다고 경고한다(살후2:9). 악한 자란 거짓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거짓 목회자다. 이들이 모든 능력, 표적, 거짓 기적을 행한다는 것이다. 거짓 기적이란 ‘사기’ ‘속임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기적을 행하여 사기 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기를 친다는 말이다. 사탄의 능력을 통해 나타나는 기적인데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둔갑시켜 사기를 친다. 그러니 여기에 속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열이면 열, 다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거짓 능력과 참 하나님의 능력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분별이 쉽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거짓 능력은 사탄의 능력인데 하나님의 능력과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분별하기가 어렵다. 분별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참 복음을 아는 성도라면 분별할 수 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먼저,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서 참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기복적이고 율법적이거나 신비주의로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부분을 잘 분별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능력과 신비한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참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만약에 “병 고치려면 하나님께 소원 예물을 드려라, 그래야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라고 하면서 기도를 받을 때마다 헌금 봉투에 두둑이 돈을 넣어 바쳐야 기도해준다면 가짜가 분명하다. 헌금해야 병 고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전형적인 기복 신앙, 무속신앙의 산물이다. 복음은 값없이 거저 주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이 헌금을 많이 하고 지성을 드려서 낫는 것이 아니다. 은혜(믿음)로 낫는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상투적으로 잘 써먹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계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내세워 헌금을 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수법이 있다. 하나는 “000의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이 크게 사업에 복을 주신다고 계시로 보여주셨다.”라는 수법이다. 이런 수법은 사람의 기분을 띄우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수법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담임목사 자가용을 사라고 하셨다. 순종하지 않으면 큰 환난이 닥쳐서 재산상의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다.”라는 수법으로 접근한다. 이런 것은 은혜의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수법이다. 그런데 우매한 교인들은 이런 미혹에 잘 넘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우상화하는지 봐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높이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교인들이 높이고 있다. 그러면 그 높임을 거부하지 않고 받고 있다. 이렇듯 아무리 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해도 자신을 높이는 자라면 거짓 종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영광을 받고 있으면 참된 주의 종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거짓 목사들이 행하는 큰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 그러므로 사탄의 능력인지, 하나님의 능력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 분별의 시금석은 복음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