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권명수박사(햇살영성심리 상담연구소장)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남자가 되는 법을 은밀하게 어릴 적부터 배우게 된다. 사내는 대범하고, 강직하며, 과묵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쉽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왔다. 길을 가다 넘어지면 스스로 흙을 털며 일어나야지, 피가 나거나 아프다고 울게 되면 “사내 자식이 이깟 일로 울고 그러느냐”는 핀잔을 듣고 자랐다.

사내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사회적 체면과 역할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무감동, 무감정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줄로 알았다. 여기에다, 장남은 하나의 짐이 더 부여된다. 장남은 한 가계를 지고 나갈 집안의 기둥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더욱 의젓하고 늠름해야 하고, 공부는 물론이고 동생들을 잘 건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슴이 무디고, 일만 아는 일벌레로 일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이 없거나 일을 안하고 있으면 이를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기까지 한다.

남성도 따뜻한 가슴을 갖을 수 있다. 조창인의 <가시고기>란 소설의 주인공인 정윤호를 살펴보자. 그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팔아서까지 수술비를 마련하여 암에 걸린 자식을 구한다. 그가 이혼당한 홀애비라는데서 충격의 강도를 더해준다. 물론 소설이긴 해도,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

그가 시인이라는 데서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시인은 머리로 시를 쓰지 않고 가슴으로 쓴다고 한다. 가슴 속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시상을 잡아 이를 그대로 가슴의 언어로 표현하는 이가 시인이다. 이런 점에서 <가시고기>의 남성 정윤호는 자신의 가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자기 내면에서 아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민감하였으리라. 그는 애절한 가슴의 울림을 외면 못하고 생명과 같은 눈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고 자신의 생을 마쳤다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이다.

필자를 위시하여 많은 남성들이 성숙한 남성이 되고 싶어한다. 스스로에게도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많은 남성들이 외부적인 조건만 강조하고 있지, 내면이나 가슴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미숙하고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부부 문제를 다루는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세상에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 가장 험하고 어렵고 오래 걸리는 여행이 뭘까요?” 답은 30센티미터 거리의 여행이다. 곧,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다.

남성은 태생적으로 머리에 많이 의존한다. 머리를 사용하여 일과 인간관계를 유지해간다. 그렇다. 차가운 머리와 이성의 영역이 우리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친밀한 인간관계에는 가슴의 표현이 더 요청된다. 서로가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인간관계는 지적인 능력, 외부 조건, 매력보다는 자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속내를 주고 받는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진리가 쉬운데 실천이 잘되고 있지 못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따뜻한 남성을 향한 첫걸음은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를 머리에서의 이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긴 얘기를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조금씩 실제로 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든든하고 성숙한 남성, 다정한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려는 뭇 남성들이여! 나와 우리 모두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시급하고도 신성한 여정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행복이 저만치서 손짓을 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