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종교계의 의견을 듣는 법

강원돈(한신대학교 신학부 은퇴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대통령이 종교계의 의견을 듣는 법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비서관을 신설하여 자신의 참모로 쓰기로 한 것이 화제거리가 되었다. 최고 권력자가 ‘종교’비서관을 두는 것은 자칫 종교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정치의 종교 개입은 종교를 어용종교화하고, 종교를 권력의 도구로 만든다. 어용종교는 종교의 본령을 망각하고 급속히 타락한다. 종교가 정치 세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현대 국가의 헌법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정치의 종교 개입을 금지하고, 종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의 종교 개입은 정교분리의 헌법 규범에 어긋나고, 공직자의 세계관적 중립 계명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종교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대통령이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이슈에 관한 종교계의 의견을 중시하고 이를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종교계의 의견을 구하는 방식은 공개적이어야 하고 공식적이어야 한다. ‘종교’ 비서를 시켜 밀실에서 특정 종교인의 의견을 수집하거나 그들의 조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종교계는 국가 현안에 관한 의견을 표명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종교계의 의견은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제출되는 것이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향해 제출되기도 한다. 종교계가 정치를 향해 의견을 내는 것은 정교분리의 헌법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 기구가 정치 기구를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하자는 것이 아니고, 정치 기구가 할 일에 공공연하게 개입하고 간섭하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서 정치가 자의적 지배를 일삼지 않게 하고,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고 공동체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이 첨예할 때, 종교는 정의를 최대한 실현하여 사회적 평화를 구현하는 방안을 제시할 능력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그러한 종교계의 의견은 공론의 장에 제출되어 공개적인 검증과 비판 아래 놓여야 한다. 종교계를 대표하는 기구라고 해서 공론의 장에서 특권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종교계가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이슈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의견의 논거들은 시민의 언어로 조리 있게 제시되어야 하고, 종교계의 의견은 그러한 논증을 통하여 공론의 장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설사 그러한 논거들이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종교적 세계관은 시민의 언어로 번역되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규범의 형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 종교계의 사회적 의견과 정치적 의견은 공적인 이성의 인도를 받아 공론의 장에 공적으로 제출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종교계가 공개적으로 제출한 공적인 의견을 경청하고 그 의견에 대한 태도를 공적으로 표명할 의무가 있다. 종교계의 의견이 등에처럼 찌르는 비판의 목소리일수록 대통령은 그 의견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가 정치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면, 종교계가 공개적으로 제출하는 공적인 의견이 아닌 것을 대통령이 듣고자 해서는 안 되고,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의견은 사특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치의 종교 개입은 무모하고, 종교의 정치 세력화는 위험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명심하기 바란다. ‘종교’ 비서관직의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 개입을 삼가고 종교의 정치 세력화를 경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금석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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