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없는 시대에 사는 여러분, 우리 가슴은 있는지 살펴봐요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가슴 없는 시대에 사는 여러분, 우리 가슴은 있는지 살펴봐요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라는 작가를 아는지 모르겠다. 루이스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해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한 소설가, 시인, 문학비평가, 신학자, 기독교 변증가, 교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 등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무신론자였다가 30세 무렵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변증적 방법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으로 기독교를 조명했다. 평신도 신학자였지만 ‘순전한 기독교’ 등의 저서를 통해 제임스 패커, 팀 켈러 같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무려 30여 종에 이르는 그의 전기물이 여러 필자에 의해 집필됐을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 루이스가 어느 글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가리켜 ‘가슴 없이 살아가는 존재’라 하였다. ‘가슴 없는 존재’란 한 마디로 말해서 정체감(identity feeling) 없이 살아가는 ‘현주소를 잃은 현대인’을 지칭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현대는 초정보 시대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 또는 각종 영상매체들을 통해서 우리는 손쉽게 쏟아지는 정보와 접할 수가 있고 정보의 홍수에 떠밀리기도 한다. 정보 중에는 진실 되고 유익하며 가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거짓되고 무익하며 무가치한 아니 유해한 것들도 많다. 좋든 굳든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이런 정보들을 선택하고 가리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큰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경건한 존재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불화하는 사악한 존재로 변하게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인들 대부분은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지만 방비할 능력, 즉 유익과 무익, 선과 악, 가치와 무가치, 미와 추를 가려서 선택할 수 있는 눈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과 나쁜 정보가 혼재하는 세상을 투명하게 가려서 보고 선택하는 ‘눈’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곧 세계관을 지칭한다.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수많은 정보더미 속에 묻혀 있어도 질식하지 않고 빠져 나와 그 정보를 여과해서 그것을 타고 한층 높이 고상하게 도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는 체 하는 착각 속에 살아갈 뿐이다.

이솝의 우화 가운데 “모기와 황소”라는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모기 한 마리가 황소의 한쪽 뿔에 내려앉았다. 모기는 앉아서 휴식을 취한 후에 날아가려고 일어나면서 황소에게 물었다 ‘나중에 다시 와서 앉아도 돼?’ 그러자 황소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상관없어, 나는 네가 뿔에 앉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다시 오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이 우화에서 황소의 뿔에 내려앉았다 날아가며 모기는 자기가 그 뿔 위에 앉았던 것을 황소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양해를 구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모기 자신의 착각이요 잘못이었던 것이다. 황소가 알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미안한 마음에 ‘나중에 다시 와서 앉아도 돼?’하고 묻지만, 황소는 모기가 뿔에 앉아 있었는지 조차도 전혀 몰랐다. 우리는 모기처럼 가슴 없이 살아가며 착각과 판단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더욱 우리 신자들이 때로 우리 삶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이 ‘무거워할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전적인 우리의 착각이요 신앙적 오류다.

루이스는 심각한 신자의 이런 착각과 판단의 오류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하지 않은 것을 최고의 악으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육체의 죄는 악하지만 다른 죄에 비하면 가장 미미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쾌락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전적으로 영적인 쾌락이다. 잘못을 남에게 미루고 즐거워하는 것, 남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험담을 즐기는 것, 권력을 즐기는 것, 증오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악한 죄악이다. · · ·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냉정하고 독선적인 도덕가가 거리의 매춘부보다 훨씬 지옥에 가까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슴 없이 살아가면서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착각이며 판단의 오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정보의 홍수에 휩싸여서 잘못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가장 잘 믿는 신자라고 뽐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가슴은 지금도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일상에 묻혀 바쁘게 지내면서 우리는 대부분 가슴 없이 즉 세계관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나아갈 미래의 방향감각을 잃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