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수 박사(햇살 영성심리 상담연구소장)
박누가 의료 선교사의 전기와 생애를 대하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 모르는 것을 큰 죄로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전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신 한국인 의료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현대 의료 체계와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 루손섬 북부 산악지대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오지의 주민들에게 무료 의술을 행하며 선교를 하던 박누가 선교사의 삶은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로서 선교지의 주민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도 모자라 선교사 본인이 선교지의 풍토병들을 직접 겪어 보며, 이 질병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할 지를 몸소 경험하며 선교를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는 밀림이 우거진 산악지대라 의료 장비를 갖고 갈 수 없는 고지대였다. 의료 장비를 가져갈 수 없으니 의사인 선교사가 직접 아파보고 나서 진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앓아 보고 나서 선교지의 주민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해주셨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아픈 만큼 사랑합니다>(생명의 말씀사, 2011) 저자는 김영선. 이 책은 암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박누가 선교사에 대한 전기이다. 박선교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기쁜 의료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의사이며 목사다. 박누가 선교사의 본명은 박삼철이나 존경하는 목사님이 ‘누가’로 지어주셔서 바꾼 이름이다. 그가 필리핀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한 건 1989년부터이다. 그는 루손섬 중부에 속하는 바기오 지역의 북부 산악지대를 사역지로 택했다. 이곳은 바기오 지역에서도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문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지 중의 깊은 오지였다. 그렇기에 어느 선교사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에 박 선교사의 마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이후 필리핀을 거점으로 무모해보일 만큼 동남아시아 오지만 찾아다녔다. 오지에 세워진 교회가 십여 개가 넘었다.
박선교사는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오지 선교를 중단하지 않고 지속해갔다. 그는 선교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췌장염, 간염, 담석증, 당뇨”까지 앓으며 치료를 받았다. 그렇기에 이런 증세를 앓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오진한 적이 없다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 상태가 10가지 넘는 질병에 직접 앓게 되면, 생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좀더 안전한 환경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선교사는 “마~ 괘안심더. 안 죽으니 걱정 마이소. 이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하나님을 모르는 병입니더”라고 말하며 자신의 열악한 선교 현장을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박누가 선교사는 자신의 몸에 행해지는 열 번이 넘는 큰 수술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선교의 의미가 독특하다. 그가 생각하는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고, 선교사는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질병에 걸려 지금 당장 다른 누구보다 의학적인 치료가 시급함에도 치료할 사람과 대상이 눈에 보이면 다른 생각 없이 바로 선교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박선교사가 생각하는 선교란 사람의 생각과 방법에게 있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따라 나누는 사랑이며 관심이고 여행”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병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또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 선교 활동을 하는 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위암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예사롭지 않다. 박선교사는 2004년 말경에 카자흐스탄의 오지인 진폴락에서 의료 선교 활동 후 귀가 도중 어쩔 수 없이 길 옆의 눈 밭에서 대변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혈변인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배가 더부룩하고 통증이 가끔 있던 것이 설마 이게 ‘그것’일까를 반신반의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혈변을 보고는 자기 몸에 큰 질병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위암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진료에 들어가게 된다.
필리핀에서 박선교사를 일차 진료한 의사는 위암인 것 같다며, 장비가 좋은 한국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오지 선교사로서 선교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귀국 항공비를 마련에 걱정이 앞섰던 가난한 선교사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국 비용을 예비해주심을 경험하고 감사하였다. 그는 경북 지역의 후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위에서 간이며 췌장에 다 퍼져 위암 4기로 6개월 정도 살 것 같다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박선교사는 이 시점에서부터 어려운 말기 위암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였다가, 배에 복수가 차면 다시 입원하는 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무려 3년여 동안 기나긴 치료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박선교사는 처음 수술받을 때는 절망적인 말기 위암 수술로 인해 필리핀 선교를 위해서 주님께 매달리며 3달의 생명 연장시켜 달라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수술 후 배에 물이 차는 복수로 인해 입·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생명 연장을 기도한 3개월이 불현 듯 다가왔는지를 몰랐다. 3개월 생명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의사가 챠트를 보면서 “어제가 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를 들은 박선교사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회개하면서 3년의 생명 연장을 다시 처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3년을 더 살게 해주이소. 마지막 부르실 때엔 사역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부르소. 꼭 부탁드립니데이. 아멘!”이라고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하였다. 마치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벽을 보고 기도하듯이 간절히 기도하였다.
박선교사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수준인데도, 단지 몇 개월, 3년만이라도 연장시켜 주셔서 맡겨준 필리핀에서의 의료 선교를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 받기를 간구하고 있었다. 선교사는 드디어 위암 말기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그처럼 기도하던 필리핀 의료 선교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항암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항암 치료 후엔 머리가 빠지고 몸이 마르고 입이 마른다. 이게 너무 힘들어 박선교사는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항암치료 주기가 되면 다시 한국에 와서 항암 치료를 받고 바로 그날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온단다. 왜냐하면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약이 몸에 반응할 즈음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란다. 박선교사의 간절했던 생명 연장의 기도가 3달에서 3년으로 바뀌었으나, 주님의 시간은 박선교사에게 10여년이라는 삶을 더 연장시켜 주셨다. 그리고 2018년 8월 26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필자는 박 선교사의 종말론적인 신앙과 삶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적지 않았다. 말기 위암을 확인하기 전에도 무려 10가지 질병을 직접 아파보는 뼈가 떨리는 통증 속에서도 이런 고통과 증상을 통해 진단 장비 없이도 환자가 의사 앞에 서기만 하면 쉽게 진단할 수 있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질병들을 허락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은 고도의 헌신된 신앙 고백에 고개가 숙여진다. 결과적으로 이런 신앙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당사자로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고 나서 하는 말이기에, 제3자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똑같이 해보라’고 조언해서는 안된다. 글자 그대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라는 신앙이 아니면, 또는 내 삶의 모든 것은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철저한 믿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이며 삶이기 때문이다.
박누가 선교사는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 그의 삶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그를 아는 예수를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이 얼마나 세속화됐으며,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또한 박누가 선교사의 삶은 인간의 시선보다는 주님의 시선과 주님께서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에 대한 바람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별히 장기 간의 코로나19 사태로 교회의 출석률이 떨어지고 열정이 저하되었다고 말하는 시기이다. 박누가 선교사의 삶을 생각하며 나 자신의 신앙과 삶을 가다듬게 한다. 박 선교사의 유해와 함께 그를 추모하는 추모관이 경북 영천시 청동면에 있단다. 가까운 시간에 신앙 순례하는 마음으로 가봐야겠기에 마음의 수첩에 적어 놓는다.
권명수 박사(햇살 영성심리 상담연구소장)
박누가 의료 선교사의 전기와 생애를 대하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 모르는 것을 큰 죄로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전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신 한국인 의료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현대 의료 체계와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 루손섬 북부 산악지대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오지의 주민들에게 무료 의술을 행하며 선교를 하던 박누가 선교사의 삶은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로서 선교지의 주민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도 모자라 선교사 본인이 선교지의 풍토병들을 직접 겪어 보며, 이 질병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할 지를 몸소 경험하며 선교를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는 밀림이 우거진 산악지대라 의료 장비를 갖고 갈 수 없는 고지대였다. 의료 장비를 가져갈 수 없으니 의사인 선교사가 직접 아파보고 나서 진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앓아 보고 나서 선교지의 주민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해주셨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아픈 만큼 사랑합니다>(생명의 말씀사, 2011) 저자는 김영선. 이 책은 암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박누가 선교사에 대한 전기이다. 박선교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기쁜 의료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의사이며 목사다. 박누가 선교사의 본명은 박삼철이나 존경하는 목사님이 ‘누가’로 지어주셔서 바꾼 이름이다. 그가 필리핀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한 건 1989년부터이다. 그는 루손섬 중부에 속하는 바기오 지역의 북부 산악지대를 사역지로 택했다. 이곳은 바기오 지역에서도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문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지 중의 깊은 오지였다. 그렇기에 어느 선교사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에 박 선교사의 마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이후 필리핀을 거점으로 무모해보일 만큼 동남아시아 오지만 찾아다녔다. 오지에 세워진 교회가 십여 개가 넘었다.
박선교사는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오지 선교를 중단하지 않고 지속해갔다. 그는 선교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췌장염, 간염, 담석증, 당뇨”까지 앓으며 치료를 받았다. 그렇기에 이런 증세를 앓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오진한 적이 없다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 상태가 10가지 넘는 질병에 직접 앓게 되면, 생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좀더 안전한 환경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선교사는 “마~ 괘안심더. 안 죽으니 걱정 마이소. 이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하나님을 모르는 병입니더”라고 말하며 자신의 열악한 선교 현장을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박누가 선교사는 자신의 몸에 행해지는 열 번이 넘는 큰 수술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선교의 의미가 독특하다. 그가 생각하는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고, 선교사는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질병에 걸려 지금 당장 다른 누구보다 의학적인 치료가 시급함에도 치료할 사람과 대상이 눈에 보이면 다른 생각 없이 바로 선교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박선교사가 생각하는 선교란 사람의 생각과 방법에게 있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따라 나누는 사랑이며 관심이고 여행”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병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또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 선교 활동을 하는 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위암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예사롭지 않다. 박선교사는 2004년 말경에 카자흐스탄의 오지인 진폴락에서 의료 선교 활동 후 귀가 도중 어쩔 수 없이 길 옆의 눈 밭에서 대변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혈변인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배가 더부룩하고 통증이 가끔 있던 것이 설마 이게 ‘그것’일까를 반신반의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혈변을 보고는 자기 몸에 큰 질병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위암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진료에 들어가게 된다.
필리핀에서 박선교사를 일차 진료한 의사는 위암인 것 같다며, 장비가 좋은 한국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오지 선교사로서 선교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귀국 항공비를 마련에 걱정이 앞섰던 가난한 선교사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국 비용을 예비해주심을 경험하고 감사하였다. 그는 경북 지역의 후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위에서 간이며 췌장에 다 퍼져 위암 4기로 6개월 정도 살 것 같다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박선교사는 이 시점에서부터 어려운 말기 위암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였다가, 배에 복수가 차면 다시 입원하는 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무려 3년여 동안 기나긴 치료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박선교사는 처음 수술받을 때는 절망적인 말기 위암 수술로 인해 필리핀 선교를 위해서 주님께 매달리며 3달의 생명 연장시켜 달라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수술 후 배에 물이 차는 복수로 인해 입·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생명 연장을 기도한 3개월이 불현 듯 다가왔는지를 몰랐다. 3개월 생명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의사가 챠트를 보면서 “어제가 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를 들은 박선교사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회개하면서 3년의 생명 연장을 다시 처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3년을 더 살게 해주이소. 마지막 부르실 때엔 사역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부르소. 꼭 부탁드립니데이. 아멘!”이라고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하였다. 마치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벽을 보고 기도하듯이 간절히 기도하였다.
박선교사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수준인데도, 단지 몇 개월, 3년만이라도 연장시켜 주셔서 맡겨준 필리핀에서의 의료 선교를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 받기를 간구하고 있었다. 선교사는 드디어 위암 말기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그처럼 기도하던 필리핀 의료 선교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항암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항암 치료 후엔 머리가 빠지고 몸이 마르고 입이 마른다. 이게 너무 힘들어 박선교사는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항암치료 주기가 되면 다시 한국에 와서 항암 치료를 받고 바로 그날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온단다. 왜냐하면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약이 몸에 반응할 즈음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란다. 박선교사의 간절했던 생명 연장의 기도가 3달에서 3년으로 바뀌었으나, 주님의 시간은 박선교사에게 10여년이라는 삶을 더 연장시켜 주셨다. 그리고 2018년 8월 26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필자는 박 선교사의 종말론적인 신앙과 삶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적지 않았다. 말기 위암을 확인하기 전에도 무려 10가지 질병을 직접 아파보는 뼈가 떨리는 통증 속에서도 이런 고통과 증상을 통해 진단 장비 없이도 환자가 의사 앞에 서기만 하면 쉽게 진단할 수 있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질병들을 허락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은 고도의 헌신된 신앙 고백에 고개가 숙여진다. 결과적으로 이런 신앙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당사자로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고 나서 하는 말이기에, 제3자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똑같이 해보라’고 조언해서는 안된다. 글자 그대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라는 신앙이 아니면, 또는 내 삶의 모든 것은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철저한 믿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이며 삶이기 때문이다.
박누가 선교사는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 그의 삶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그를 아는 예수를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이 얼마나 세속화됐으며,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또한 박누가 선교사의 삶은 인간의 시선보다는 주님의 시선과 주님께서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에 대한 바람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별히 장기 간의 코로나19 사태로 교회의 출석률이 떨어지고 열정이 저하되었다고 말하는 시기이다. 박누가 선교사의 삶을 생각하며 나 자신의 신앙과 삶을 가다듬게 한다. 박 선교사의 유해와 함께 그를 추모하는 추모관이 경북 영천시 청동면에 있단다. 가까운 시간에 신앙 순례하는 마음으로 가봐야겠기에 마음의 수첩에 적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