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윤응진(철학박사, 전 한신대학교 총장)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아마 구약성서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한 사람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모세를 꼽게 될 것이다. 과연 모세는 그럴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그가 자발적으로 출애굽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지도자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호렙 산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정녕 그에게 ‘낯선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은 멀리 하늘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초월자가 아니라, 땅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속정치에 개입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하나님은 강력한 제국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고난을 받고 있던 히브리 노예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을 해방시키려는 꿈과 의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낯선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내어 자신의 문제의식과 과제인식에 참여하도록 권고하였다. 그 부름과 제안은 속세를 떠나 광야에서 양떼를 돌보며 살아가던 은둔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억압과 착취의 현실에 분노하여 살인까지 저지르고 도망쳐 나왔는데, 바로 그 현장으로 되돌아가 사회혁명을 실행하라니!

하나님의 제안을 받은 모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출 3:11)였다. 그는 결코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지도자로 훈련받은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집트 제국의 거대한 지배체제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분노와 열정만으로는 현실을 변혁할 수 없다는 사실도 처절히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무모하게까지 여겨지는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지녔던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의심과 무기력함을 탓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을 그의 ‘불신앙’ 탓이라고 꾸짖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3:12)라는 ‘약속’의 말로 용기를 불러일으키려 했다.

모세는 제안을 거부할 구실을 찾기 위하여 화제를 돌려 말했다: 누가 보냈다고 할까요? 그래도 사람들이 제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으며, 두 가지 표징들을 보여줄 능력까지 선물했다. 그래도 모세는 다른 적절한 구실을 찾아냈다: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4:10). 이쯤 되면 대화가 중단될 법도 하지만, 하나님은 또 그를 설득하며 격려하였다. “가거라. 네가 말하는 것을 내가 돕겠다. 네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4:12). 이 정도 되면 모세는 순종하고 길을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또 사양하면서 거절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4:13). 이제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부딪쳤다. 그런데 하나님은 “크게 노하시어” 말씀하면서도, 모세에게 “말을 잘 하는”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설득하고 격려하려 했다. 결국에는 모세의 지나친 겸손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가 폭발하였지만, 그 분노는 모세에 대한 저주나 심판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구체적인 도움을 ‘약속’하는 말로 끝났다.

 

오늘날 출애굽 사건은 잊힌 전설처럼 되었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 구원자로서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가장 명확히 계시한 구원사건이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Exil)에 바로 출애굽 사건(Exodus)을 기억하며 구원받을 날을 꿈꾸었다.

이 위대한 구원 드라마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은둔하던 모세를 역사의 무대로 불러냄으로써 시작되었다. 비록 여러 가지 구실로 그 부름을 회피하려 하기는 했으나, 모세는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출애굽 프로젝트를 충실히 이행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아마도 그는 상황의 엄중함과 자신의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였기에 참으로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그에게 허락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모세를 기억하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호렙 산에서 만났던 그 야훼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그분의 뜻을 경청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뇌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비하여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스스로의 모습을 거듭 되돌아보았던 그의 인간다움을 본받기 위해서이다.

 

요즘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대선 후보’로 나서는 진풍경을 보고 있다. 개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혹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섰다는 후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모세가 만났던 ‘그’ 하나님을 만났던 것일까? 그들은 그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라던 모세의 말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던 것일까?

 

기억하라, 지배 권력과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마 4:8-9)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