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신학의 필요성③: 신앙과 믿음,

권명수박사 (햇살영성심리상담연구소장)


심층 신학의 필요성③: 신앙과 믿음,


필자는 지금까지 종교의 세 번째 요소인 심층 신학의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곧, 종교의 친밀성을 나타내는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내면성의 요소를 다룬다. 이번은 신앙과 믿음의 차이와 관계를 분석하며 심층 신학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

신앙과 믿음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구별하기 쉽지 않다. faith는 신앙으로, belief는 믿음으로 통상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faith를 믿음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통상적인 관례를 따라 faith는 신앙으로, belief는 믿음으로 해석하며, 이 두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의 차이를 찾아보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믿음은 권위에 기초해서 주장하는 사실이나 명제에 정신적으로 또는 인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초기 신자들이 교회에서 세례 교육을 받아 배우고 이해한 것들이 있다. 곧, 믿음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각 순서들의 의미, 주기도문, 사도신경에 담겨진 내용 등을 배우면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예로, 신자들이 신앙하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각자 따로 떨어진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세 존재가 하나라는 ‘삼위일체’임을 학습하며, 믿음의 내용을 채워가게 된다.

이에 비해 신앙은 마음의 태도나 자세보다 더 포괄적인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온전한 인격, 마음, 의지와 감정의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은 한 인간의 전인격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또한 신앙은 거룩함을 인식하는 감수성과 이를 통전적으로 파악하는 이해 능력, 이를 통해 자신의 전인격적 존재의 참여와 그 신앙 대상에 대한 애착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신앙은 하나의 관념에 동의하는 지적인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전인격적인 존재에게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폴 틸리히는 신앙을 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무나 넓고 깊어 구체적으로 궁극의 상태를 지적하며 거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궁극적인 관심을 갖은 상태는 우주나 인생의 전반적인 것을 향한 태도나 삶의 자세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믿음은 믿고 고백하는 교리나 관념에 대한 인간의 지적인 동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이 포괄하는 범위나 깊이가 좀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이나 공부를 통해 배워서 형성된 것이 믿음이라 한다면, 자신의 삶에서 경험이나 실제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은 신앙이다. 신앙은 계산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려는 머리의 영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통해서 형성되어가며 나타나게 된다.

신앙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이 신앙의 대체물은 아니다. 각자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신앙은 믿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만약 믿음이 신앙에서 분리된다면, 믿음은 단지 형식적이며 영적으로 의미없는 지적으로 동의에 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믿음으로 구체적으로 형식을 띠는 모습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신앙이 비지성적 행위로 빠질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신앙은 표현을 추구하는 지울 수 없는 무형적인 통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신앙은 신조(creed)의 형태로 자신의 믿음을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길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신조의 탄생 과정은 오랜 세월 동안의 통찰의 축적과 성찰의 시간이 뒷받침되며 해당 전통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간다.

심층신학은 믿음보다는 신앙에 더 가까운 관계에 있다.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머리의 믿음도 중요하나 영혼의 인도에 과감하게 따르는 신앙의 요소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