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산책

한평우목사(로마지사장)


로마의 산책)


형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가 형제사이가 아닌가 한다.
자랄 때는 툭탁거리기도 하지만, 얼마나 든든한가, 형제라는 이름이.
그런데 그토록 가까운 형제 사이에, 돈이나 권력이 끼어들게 되면 문제는 복잡하게 된다.
요즈음에도 돈 때문에 형제사이에 칼부림이 있었다는 얘기가 종종 신문에 실리곤 한다.

제정 로마시대 카라칼라와 게티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
카라칼라라는 이름은 본명은 안토니누스로, 그것은 별명으로 겐트족의 전통모자라는 의미다.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북아프리카(현재의 리비아의 트리풀리)에서 태어난 장군으로 출세한 사람이었다. 혼란스런 시대, 군대를 이끌고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침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장군으로서는 탁월하였기에 로마의 숙적이었던 파르티아를 물리치고 속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으니 자식들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일에는 점수를 줄 수 가 없겠다.

두 형제는 한 살 터울 이었는데 항상 으르렁거렸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이 염려되어 형제는 항상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유언으로 남길 정도였다. 아버지가 브리타니아 원정 중에 사망하자, 공동 황제가 된 형제는 본격적으로 상대를 향해 격한 탐욕을 들어냈다. 상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서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된 확증편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에게 권력이란 결코 양분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 비해 광대한 로마제국을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고 부하에게 서로마 황제의 자리를 준 디오클레티아누스(285-305AD) 황제 같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이들은 서로를 제거하려고 전전긍긍하였지만 항상 주변에 근위병들을 거느렸기 때문에 기회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에게 형 카라칼라는 동생하고 화해하고 싶다고 제의 했다. 그러니 동생을 어머니에게 오도록 부탁드렸다.
형제가 화해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까?
어머니는 동생을 오라고 명하고 그 명을 받은 동생 게티는 의심 없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근위병들에게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그 때 형 카라칼라는 대기해놓은 백부장들로 하여금, 동생 게티 황제가 들어오면 가차 없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동생이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들어오자 숨어있던 백부장들은 튀어나와 동생 게티를 공격했다.
동생 게티는 21살 난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기습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다만 엄마를 부를 뿐이었다. 엄마, 내가 지금 칼에 찔렸어요, 나를 도와주세요.
게티에게 달려가려는 엄마의 손을 백부장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는 사이 공동 황제 게티는 죽어가고 있었고, 결국 엄마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때가 212년,2월이었다.
숙적으로 여긴 동생을 죽이고, 비로소 1인 황제가 되었을 때 카라칼라는 마음이 시원했을 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그 반작용으로 얼마나 잔인한 통치를 했는지 모른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고, 공포정치를 이끌어갔다. 아버지의 유언처럼 오로지 군인들을 위한 정치를 했다, 그들에게 봉급을 파격적으로 인상하였고, 원로원의원들은 아예 꼴도 보기 싫어했다. 아버지처럼---
그런데 그의 생명도 오래갈 수 없었다.

어느 날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갔다가 작은 실수를 저지른 두 백부장들을 엄하게 질타하게 되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런 일에 앙심을 품은 두 백부장은 황제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제의 주변에는 항상 근위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속이 좋지 않은 황제가 근위병을 물리치고 소변을 보기 위해 한편으로 물러서자, 백부장이 황제에게 긴요한 전갈이 있다는 핑계로 다가가서 바지를 내린 황제의 배를 찔렀다. 그는 동생을 죽인지 5년만인 217년,4월 8일에 31살의 나이로 죽임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다가,

그가 남긴 유산이 있다.
로마의 남쪽 성벽 가까이에 건축한 웅장한 카라칼라 목욕장이다.
요즈음으로 치면 거대한 레저시설이다. 도서관과 사교실까지 겸비하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목욕장이라서 한번에 3천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 목욕장에서 여름에는 로마오페라에서 항상 오페라를 올린다.
달이 밝게 비추이는 밤에 보는 오페라는 한껏 즐거움을 준다.
수년전에는 이곳에서 트리 테너의 연주가 있었다.
파바로티, 도밍고, 호세카레라스,
역사에 사악한 황제로 치부되었지만, 그에게도 치적이 있어 후손들에게 여름밤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니 참 아이러니하다 싶다.
형제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