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려는 인간들, 인간이 되신 하나님

윤응진(철학박사, 전 한신대학교 총장)


신이 되려는 인간들,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의 뿌리는 강력한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스스로 살아있는 신으로 행세하면서 (때로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동료인간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려는 탐욕에 자리 잡고 있다. ‘신이 되려는 자들’은 스스로가 인간임을 부정함으로써 비인간화되며,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함으로써 비인간화된다. 이러한 부조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강한 자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충성경쟁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곤 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신이 되려는 인간들’에 의해 초래된 비인간적 현실로부터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양육강식으로 인한 무질서와 혼란만이 인류의 숙명적 현실이며, 그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지혜로운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이처럼 암흑과 죽음만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사 9:2, 마 4:16; 눅 1:79)에서 세계사의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온 세계가 호적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눅 2:1-7).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구유에 눕혀진 아기! 이 대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당시 로마제국의 최고 권력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신적인 존재로서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존재이다. 그는 본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불리었는데, 기원전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함으로써 로마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은 그에게 (신적인 권위를 소유한) ‘존엄한 자’라는 뜻을 지닌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주었다. 그가 황제가 됨으로써 로마 공화정은 무너지고 ‘로마제국’이 탄생하였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적 지배자는 헤롯 대왕(마 2:1)이었다. 에돔인 출신인 그는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팔레스타인을 다스릴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는 사마리아를 재건하여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화려한 도로 및 광장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해안의 항구를 옥타비아누스의 성(姓)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가이사랴’라는 이름으로 옥타비아누스에게 봉헌했는데, 그곳에도 아우구스투스 신전이 세워졌다. 로마 황제에 대해서는 역겨울 정도로 비굴한 태도를 취한 그는 국내 정치에서는 매우 잔인한 폭군이었다. 그는 그의 정적들은 물론 그의 사위, 삼촌, 그의 아내인 마리암네 1세, 장모도 살해했으며, 말년에는 정권안보를 위해 세 명의 아들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마태복음 저자는, 그가 아기 예수의 생명까지 해치려 했다고 보도한다.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산헤드린의 최고 권력자인 대제사장직은 로마 총독이 로마제국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서 임명하는 자리였다. 대제사장에 임명된 안나스는 로마제국을 추종하는 사두개파에 속한 재력가였는데, 그는 성전제도를 악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대 민중들을 착취하였다. 퇴임 후에도 죽을 때까지(~ 서기 35년) 종교적 지배체제의 실세로서 행세하였다.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 그에게 충성하면서 동시에 그를 모방하여 권력을 휘두르던 헤롯과 안나스가 지배하던 그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호적등록을 통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지배체제에 편입되어야 하는 한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성서는 그 아기가, 오랫동안 여러 제국들의 지배체제들 아래에서 억압받고 착취 받던 유대 민중들이 고대하던 그 메시아(그리스도)였다고 증언한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에 합류하여, 그 아기의 모습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만난다. 인간들은 신이 되려 했으나, 하나님은 인간으로, 그것도 비천한 자리에서 태어나는 아기로 우리를 찾아 오셨다! - 이것이 성탄의 역설이며 신비이다. 이 아기의 탄생으로 인하여 아우구스투스도, 헤롯도, 대제사장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세워졌다. 이제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신격화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만,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길에 합류하도록, 즉 예수의 뒤를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기 예수의 성탄은 하나님에 의해 시도된 전대미문의 혁명사건이다.

 

이탈리아 로마에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옛 로마 광장)의 폐허가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곳에는 황제들이 스스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세워놓았던 신전들의 잔해가 남아있다. 파괴되어 흔적만 남은 그 신전들은 신이 되려 했던 인간들의 몰락을 증언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구유에 눕혀진 아기! 아우구스투스는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아기의 이름은 오늘도 인류의 구세주로서 기억될 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가르침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직도 ‘신이 되려는 자들’의 만행으로 인해 곳곳에 여전히 어둠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그리고 그들을 닮으려는 우리의 탐욕을) 완강히 거부하고 저항하며,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기억해내야만 한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눅 1: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