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대신에, 네가 외쳐라!

윤응진(철학박사, 전 한신대학교 총장)

 

 천사 대신에, 네가 외쳐라!


동일한 저자의 작품으로 알려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이어서 읽어보면, 성탄에서 고난으로, 그리고 부활과 오순절로, 또 사도들의 증언들로 이어지는 신약성서의 역사가 한줄기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특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작용한 천사들의 활약이다.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그리고 목자들에게 천사가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 ‘기쁜 소식’이 무효화될 위기에 처했을 때, 겟세마네의 밤에 고뇌하던 예수 곁에도 천사가 있었다. 그 끔찍한 골고다 위에는 천사마저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래도 예수의 부활소식을 처음으로 알려준 것도 천사들의 직무였다. 승천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서 있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 이 예수는, ... 다시 오실 것이다”(행 1:11)라고 일깨워주며 그들의 등을 떠밀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던 안내자들도 천사들이었다. 그 후에도 천사들은 종종(행 5:19, 8:26, 10:3-4, 12:7-11, 27:23) 사도들에게 갈 길을 알려주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떠맡는다. 성서 전체에서 이렇듯 천사들이 자주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성탄예고에서 시작하여 부활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이 이처럼 활약하는 것은, 세상의 체제와 질서를 뒤엎는 ‘하나님 나라’ 혁명이 인간들의 능력만으로는 생각될 수도 진행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혁명운동은 모든 사악한 종교체제와 국가체제의 위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관철되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시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천사들은 여전히 조력자들에 불과하며, 그 혁명운동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성탄소식은 천사들의 합창으로 소수에게 알려졌으나, 그 복음의 완성인 부활소식은 제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온 세상에 널리 선포되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의 승천 이후에,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행 1:22)으로서 자기정체성과 사명의식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다락방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수가 처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살인자들의 기세가 등등한데 어찌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엄두가 났겠는가!

그렇지만 부활소식은 일부 개인들의 마음에만 담아둘 신앙내용으로 머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제 천사들을 통해서 소수에게만 알려지는 은밀한 소식이 아니라, 제자들 자신의 입을 통해서 공개석상에서 선포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신앙의 확신’만이 아니라 예언자 전통 위에 서서 기득권 세력에 저항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들이 그 확신과 용기를 얻게 된 계기가 바로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이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마침내 공개석상에 나타나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증언은 언어의 장벽을 뚫고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 사건은 단순한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동을 증폭시키려는 성령의 혁명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공개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 제자들의 행위는 예수를 처형하였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하는 혁명적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군중들 앞에 나서서, 유대인 청중들이 만났던 예수의 삶과 고난을 상기시키면서, 위험천만한 연설을 감행하였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 회개하십시오!”(행 2:22-38). 이처럼 도발적인 항변이 어디에 있겠는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처형하였던 그 사형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 따라서 그 심판은 하나님에 의하여 무효화되었으며 오히려 심판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 스스로를 살아있는 신으로 행세하는 로마황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주님’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처형되었던 그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 그러므로 권력자들 편에 섰던 것을 “회개”하고 부활한 예수께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 -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가 감행한 증언의 내용이었다. 폭력국가인 로마제국의 지배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의 죄상을 폭로하고 참회와 철저한 방향전환(회개)을 촉구하는 이 증언은 예수의 말씀보다 더욱 과격해 보인다. 이것은 사실상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선전포고이며 급진적인 선동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증언’과 그 증언에 대한 응답으로서 ‘회개’는 입술로만 실행되어서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 증언과 응답은 삶으로, 즉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 실천되어야 했다. 사도들과 새롭게 합류한 신앙인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행 2:42).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행 2:44-45). 이렇게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사랑과 정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오순절 공동체가 교회의 첫 모습이었다! 그 신앙공동체는 로마제국의 엄격한 신분질서와 경제적 관행을 깨뜨리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실험을 실행하였으므로, 그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이미 사회혁명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 공동체의 신앙과 삶의 스타일이 누룩처럼 주변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성탄찬송을 부르던 천사들은 더 이상 부활찬송을 부르지 않는다. 부활의 증언은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우리의 입술과 팔 다리를 통해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고 실천하기를 원한다.

2022년 성령강림절을 맞으면서, 한국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는 천사들 대신에 무엇을 외치고, 무엇을 실행하여야 마땅한가?

예수를 처형하였던 그 세력들이, 그와 유사한 악한 자들이 권력을 소유한다면, 그 권력 자체가 악할 수밖에 없다. 그 권력의 횡포로 억울한 피해자들, 심지어 예수처럼 죽음에 내몰리는 희생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 편에 서서 가해자들의 범죄들을 폭로하며 저항하지 않고서는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악한 권력과 타협하거나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면서는 결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넘기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만 한다고 해도 부활의 증인이 될 가능성은 없다.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세상을 통치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증인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가, 천사들 대신에, 크게 외쳐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가 살해한 그 예수를 부활하게 하셨다!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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