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강 영 선 (한신대 명예교수)


 러시아 정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역사상 최초의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모여서 예배드리기 시작한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이며 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는 베드로였다. 얼마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닥치자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은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 무렵에 생긴 교회가 안디옥 교회다.

이렇게 시작한 그리스도교는 바울사도의 등장과 함께 점차 세계로 확장된다. 소아시아 지방에서 유럽으로 확장된 그리스도교는 처음 3백 여 년 동안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받았으나, 주후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부터 포교(布敎)의 자유를 얻고 양적으로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로마는 321년에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키는 법률을 발표했고, 323년에는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 전체를 통일하게 되면서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이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에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했다. 그러나 337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사망하면서,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하게 된다. 그 후로 그리스도교 세력 판도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세력과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교회세력으로 두 축을 이루게 되는데, 이 두 세력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명칭은 이 두 교회 세력이 서로마 지역과 동로마 지역에 위치한 데서 유래했다.

따라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의 시작은 4세기부터로 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긴 것이 동서방교회의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이 두 도시를 중심으로 로마는 결국 서로마와 동로마로 최종적으로 분열되었는데(395년), 이를 계기로 두 지역의 교회세력 간에도 분열과 갈등이 싹트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라틴 문화권과 그리스 문화권의 분열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로마교황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파워 게임이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독론(예수에 대한 해석) 논쟁, 성상숭배 논쟁, 성령에 대한 논쟁 등, 신학적 차이로 인한 논쟁들이 동서방 교회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된 후(395년), 가톨릭은 서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정교회는 동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그리고 동방교회가 위치했던 그곳의 본래 이름이 비잔티움(Byzantium)이었으므로, 동로마제국을 ‘비잔틴제국’이라고 불렀고, 동방교회를 ‘비잔틴교회’라고 불렀다. 그 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이 두 산맥은 정치적 파벌과 교리적 논쟁으로 인해 점차 거리가 멀어지다가 결국 1054년에 영구적으로 분열하게 되는데, 이 1054년은 로마교황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파문을 당한 해였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한 동방교회는 ‘정교회’(正敎會, Orthodox Church)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정교회를 처음에는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가톨릭이 라틴문화권인데 비해서 정교회는 그리스 문화권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동방정교회는 십자군전쟁으로 파괴와 약탈을 당했고, 결정적으로는 이슬람 세력이 소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장악하면서 결국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군대에게 정복당하고(1453년), 오스만제국이 등장하면서 비잔틴제국은 막을 내리게 되고, 동방정교회는 그 중심축이 러시아로 옮겨가게 되면서 러시아 정교회가 동방교회의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다.

지금도 이스탄불에는 동방정교회의 본산이었던 성소피아 대성당 건물이 있는데,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찾아볼 수 있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Αγία Σοφία,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라고 불리는 소피아 대성당은 537년부터 1453년까지 그리스 정교회 대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군대에게 정복당한 1453년부터 1931년까지는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장되었다.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 제국에 의해서 점령당했던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세를 확장했던 정교회는 오랜 동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그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다가 1917년의 공산당 혁명(볼셰비키 혁명)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정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정권 치하에서 한동안 고통의 세월을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이 시기에는 예배를 드릴 수도 없었고, 설교를 할 수도 없었으며, 신도들이 성경을 가질 수도 없었고,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교를 가르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교회당들의 상당수가 공산정권의 무기공장과 방직공장을 비롯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60여년을 지내오다가 1980년대초 개혁과 개방(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을 타고, 또한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신앙과 포교의 자유를 다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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