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히틀러 탓?

윤응진(철학박사, 전 한신대학교 총장)


 모든게 히틀러 탓

나치독일의 유대종족 말살 정책에 대한 해석에서 독일(구 서독) 역사학계의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전통주의자들 혹은 프로그램론자들이라 불리는 학자들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말살정책이 종족이론적인 반셈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인되었으며, 그것은 히틀러가 세운 “계획대로” 실천에 옮겨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수정론자들은 미리 구상된 계획에 따라 실행된 통일된 유대인 말살 정책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무원들 각자의 세력 확장 충동에 의하여 그 정책은 점차 구조적으로 조직화되어 체계적으로 실행되었다고 본다. 물론 유대인 학살문제만이 아니라 나치 독일이 자행한 범죄들의 최종 책임자는 히틀러이지만, 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충성경쟁을 벌인 하위조직들에 관여한 자들의 책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수정론자들의 통찰이 더욱 역사적 현실에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상 나치 독일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히틀러 한 사람만의 사악한 계획과 악행이 빚어낸 현상만도 아니었다. 적어도 10여년에 걸쳐서 군부세력만이 아니라 정치권력, 종교권력, 학계, 언론권력 등이 총동원되어, ‘극우 민족주의자’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라는 집단적 환상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여론조작만이 아니라 테러를 통해서, 그리고 막판에는 제국의사당 방화사건 등을 통해서 조작된 공포분위기 아래에서, 그러나 이른 바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합법적으로 히틀러는 제국의 수상으로 ‘선출’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 전개된 나치독일의 만행들도 대부분 국민들이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집단적 큰 저항 없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 그런데 어찌 나치 독일의 범죄를 히틀러 한 사람만의 악행으로 단정할 수 있겠는가?

유대인 박해와 학살도 오랜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역사적 배경들을 지니고 있다. 나치 독일에서 이루어진 반유대주의적 악행은 교회들과 신학자들, 언론계, 학계, 사법부, 의사들, 학교교육, 철도청 ... 등 온갖 사회구성원들과 조직들이 체계적으로 협력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 범죄의 원인을 다만 히틀러에게 돌리고, 그가 자살함으로써 악의 뿌리가 근절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오히려 히틀러를 악의 화신(化身)으로 규정하는 것은 실제의 근본적인 악의 ‘꼬리 자르기’에 머물려는 것이 아닐까?

 

칼 바르트는 제2차 대전 종전 후에 독일을 방문하여,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신학자 대회에 참여했을 때, 많은 신학자들이 ‘악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아마도 히틀러를 악마화함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를 불가항력적이었던 것으로 변호하려 했던 모양이다. 바르트는 그들에게 이렇게 항변하였다: “왜 그렇게 악마 얘기만 하는 것요? 왜 구체적으로,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정말 바보들이었다고 말하지 않는 거요?” 그는 그들에게 합리적인 사고와 솔직한 자기비판적 성찰을, 더 나아가 철저한 방향전환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교회를 새롭게 형성하려던 사람들은 히틀러에 저항하였던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에 불과하였고, 실제로 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자들은, 성서의 메시지를 새롭게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려 애쓰기보다는, 나치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신학적, 목회적 경향성을 보였다. 이른바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도 사실상 철저히 참회하고 진정한 방향전환을 약속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물론 독일은 종전 이후에 나치부역자들을 심판대에 세웠다. 그래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던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에는 20여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1960년대의 학생운동 이후, 비로소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나치의 뿌리를 근절시키려는 작업이 전개되었다. 지금도 독일에서 네오나치 운동은 여전히 불법이고, 나치를 지원하던 모든 기독교적 논리, 학문적 주장들은 결코 용인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현대사는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남북이 분단되고 있으므로,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모순의 근본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 용이하지 않다.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그런 노력을 “이적행위”로 간주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은 감행되었고, 현재 전직 대통령들 두 사람이나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적폐가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만들어 놓았던 구조적 부정의와 폭력 체제 아래에서 협력하고 특권을 누리던 세력들에 대한 동일한 심판이 단행되지 않는다면, 아직도 ‘촛불혁명’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바로 최근에 드러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들이 아직도 적폐세력이 이루어 놓은 구조악의 뿌리가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개발이익을 갈취하는 집단에 속해 있는 자들의 면모가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을 심판하기 위해 부름 받았던 특검 구성원들과 그들에 맞섰던 변호인의 이름이 함께 그 집단에서 이익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그 충격적 진실을 폭로하고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 부패한 검찰, 언론, 사법부, 고위공직자의 카르텔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심판도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적폐세력의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던 것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구조적 모순을 덮으려는, 심지어 부정하려는 자들은 적폐세력의 공범자들로서 비판받지 않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일은 한국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코 나사렛 예수가 원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는 낡은 사회에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을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선발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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