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강인해야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차분하고 강인해야

 

작년(2020) 말 어느 날, 윤석열 그 당시의 검찰총장이 SNS 프로필에다 ‘차분하고 강인하라’(Be calm and strong)라는 문구를 써 넣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나도 이 문구를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가끔 방명록에 남길 말을 적을 때 써오고 있는 명구다. 이 문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만든 표현이 아니고,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a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가 그의 작품『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한 말이다.『노인과 바다』는 내가 국역해서 그 줄거리를 잘 기억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다. 산티아고는 아주 늙었으나 그의 두 눈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고 있고 그의 머릿속은 오랜 세월 축적된 요령과 연륜으로 가득 차 있다.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85일째 되는 날도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그 날,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청새치를 만났는데, 산티아고의 조각배를 끌고 갈 정도로 힘이 좋았다. 청새치가 수면 위로 몇 번씩 뛰어오르는 바람에 산티아고는 넘어져 손을 다치기도 한다. 잠시 잠든 산티아고는 꿈속에서 라이온을 만난다. 사흘째가 되던 날, 산티아고의 작살은 수면 위로 올라온 청새치의 심장을 관통했다. 산티아고는 자신이 잡은 청새치를 끌고 다시 항구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 무렵, 상어 떼가 나타났다. 산티아고는 자신을 향해 덤비는 상어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고통으로 느껴야 하고 나이프와 몽둥이는 모두 부서져 버렸다. 격렬한 싸움을 했지만 청새치는 상어 떼들의 공격에 결국 뼈만 남았다. 항구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그의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잔다. 잠이든 산티아고는 라이온을 꿈꾸는 것으로 끝 맺혀진다.

“차분하고 강인하라”라는 말은 먼 바다에서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 산티아고가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며 내뱉는 말이다. 시련과 핍박, 절망과 좌절에 비열하지 말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로 많이 인용된다. 나도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것과 같은 그런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차분하고 강인하라’고 격려를 드리고 싶다. 또한 “차분함을 지키며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라는 말도 하고 싶다. 코로나 19 와중에도 우리 국민들은 차분하게 하던 일들을 계속하고 있는데 반해, 정치판이 오히려 차분하질 못하고 시끄럽고 정말로 민망할 정도로 소란하고 어지럽다. 정신적인 질서와 윤리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무법천지 목소리가 살벌하고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에서 배워야할 것은 노인 산티아고의 차분하게 버티는 견인정신과 그 감탄할만한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업으로 삼아온 어부로서 청새치로 환유된 ‘바다’와의 대결에서 잃은 것도 조금은 있지만 끝까지 버텨 승리를 거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멋지다. 그리고 끊임없이 치분하게 노력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여 대처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는 그의 삶의 태도도 본받을만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허둥대고 설치며 흥분하여 들뜨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고 차분하게 현실을 살피며 대처할 수가 없다.

2021년 제28회 방일영국악상을 받는 사람은 무형문화재 김일구 명창이다. 그는 9살에 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해 열다섯 살 때부터 왕자 같은 아역을 맡아 창극단 무대에 섰지만, 그 무렵부터 찾아온 변성 때문에 목소리가 시원하게 터지지 않아 악기 아쟁 산조를 배웠고, 가야금 산조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위기 때마다 덤벙대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여 무형문화재도 되었고 방일영국악상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는 아침 9시면 ‘온고을 소리청’에 출근해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는 판소리ㆍ아쟁ㆍ가야금에 은한 삼재(三才)지만, 그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잘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차분하게 전환시킨 그의 강인한 노력에서 기인된 것이다. 위기는 불시에 예고 없이 닥친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러하다. 현실을 돌이켜 보면 개인들은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강인하게 움직이며 위기를 대처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이 무모하게 설치고 흥분하여 사리를 잃고 이랬다저랬다 천방지축(天方地軸)이다. 젊은 세대들이 나라의 위세를 밖으로 떨치는 모습을 차분하게 계속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차분함을 또한 지켜나가며 바로 서서 젊음의 기백과 강인한 힘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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