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이야기-27

 정 신 재(시인․문학평론가)


여호사밧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873-835 B.C.)이 위에 올라 25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다. 여호사밧은 부왕 아사의 개혁 운동을 지속하였다. 그는 경건한 인물로서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려 하였다(대하 17:6, 19:3). 유다 왕국이 견고해지고 그 부귀와 영광이 극하여졌을 때, 그는 북방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대하 18:1,2). 그는 평화를 이루는 방법의 하나로 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 아달랴를 자부로 맞아들였다(왕하 8:18). 이로 인해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아내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으로 크게 부패하였다(대하 21:6).

이스라엘 왕국과 군사 동맹을 맺어 아합의 청원을 받아(왕상 22:4, 대하 18:3) 아람의 벤하닷과의 전쟁에 참예하였다. ‘길르앗 라못’의 전투에서 그는 겨우 구원을 얻어 생명을 건졌으나, 이스라엘 왕국의 아합이 전사하였다(왕상 22:29-33, 대하 18:29-34). 그 후 아합의 아들 여호람의 청원을 받아 모압을 치는 전쟁에 같이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7일 동안 물을 얻지 못해 군사와 가축이 죽게 되었을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도록 이스라엘 왕에게 권하여 엘리사에게 갔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는 개천을 파서 흐르는 물을 얻게 하여 그들은 생명을 구할 뿐만 아니라 모압을 크게 이겼다(왕하 3:15-27).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사밧이 악한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것을 크게 슬퍼하셨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신앙과 정치가 일치하지 못하였다.

특히 그가 아합의 딸 아달랴를 자부로 맞이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그의 아들 여호람(848 B.C.-841 B.C.)는 세속적인 정치를 하여, 왕이 된 후에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다.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략으로 여호람 왕의 왕가는 진멸되었으며 말째 아들 아하시야(여호아하스, 841 B.C.)만이 살아 남아서(대하 21:17) 그가 2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의 교도를 받아 아합의 길을 따랐다.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요람 왕(아합의 아들)이 아람의 하사엘과 전쟁이 있었을 때 그를 도우러 갔다가(역대하 22:9) 때마침 반란을 일으킨 이스라엘 왕국의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아달랴가 정권을 잡았으나, 그녀는 반대 세력이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왕족과 귀족들을 무참히 죽였다. 이방신을 섬기는 아달랴를 며느리로 받아들인 여호사밧의 실책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