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고 싶다.

    최원현 수필가


별을 보고 싶다


충주 외곽 주동 마을에 사시는 김 선생의 집은 별 숲에 있단다. 그 별을 보러 오라고 몇 번이나 청해주셨지만 낮에는 가봤어도 정작 밤엔 가지 못했다. 주먹보다 큰 별들이 바로 머리 위 눈앞까지 내려오는데 손으로 잡으려 하면 살짝 물러난다는 별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나이에도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무언가 좋은 일이 막 일어날 것만 같다. 하지만 어떤 때는 두렵기도 했다. 어린 날 마당에 앉아 할머니랑 하늘의 별을 세고 있는데 ‘아이고 저 노인네 가나보네‘ 하시는 게 아닌가. ”할머니 뭐가 가요?“ 내가 묻자 “별이 지잖냐? 누군가 가나본데 갈 사람이 누구겄냐. 그 노인네지“ 그런데 그렇게 별이 지던 다음날이면 신기하게도 건너마을 친구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순간 별도 태어난다던 할머니 말씀에 내 별은 어느 것이냐고 귀찮게 물었던 생각도 난다. 한데 근래 들어서는 언제 별을 보았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별은 밤에나 볼 수 있다. 물론 낮에도 있겠지만 밝은 낮엔 보이질 않는다. 밤에도 하늘이 맑고 달이 밝지 않은 때에라야 잘 볼 수 있다. 하니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고 살기도 한다지만 밤이 낮 같은 요즘에야 어찌 별을 볼 수나 있으랴.

어린 날 마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서움에 걸음을 빨리하면 내 머리 위 별도 꼭 나만큼 빨리 따라와 주곤 했다. 집에 도착하여 쳐다보면 별도 그 자리에서 나만큼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서있었다. 문을 열고 나만 들어가는 게 못내 미안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별을 볼 수가 없다. 대기에 온갖 나쁜 것들이 많이 차 있어서 보이지 않기도 하겠지만 낮 보다도 더 밝은 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별의 존재도 잊고 산다. 현란한 광고물의 불빛들, 도로의 가로등, 자동차의 라이트 등 모든 빛이 별빛을 가릴 뿐 아니라 우리 눈의 동공을 작게 만들어버려 별을 볼 수 없게 만든다. 해서 뜻있는 사람들은 별을 보기 위해 관측소를 만들어 개방하고 축제도 연다. 그래서 일부러 추억의 별을 보러 가야만 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매년 1월 CES라는 전자제품 박람회가 열리는데 이때 별을 보는 것에 참석의 묘미가 있다 한다. 2시간가량 북서쪽으로 달리면 데스밸리라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서 달과 구름의 방해조차 없는 밤에 쏟아질 듯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을 본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별밤을 기다렸다. 지난해 8월이면 몽골로 우리 수필가협회 해외 세미나를 가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이 바로 별로 가득한 몽골의 밤하늘이었다. 해서 달이 없는 초순으로 날도 잡았다. 별을 만나는 방법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겠는가마는 이미 우리가 망쳐놓은 별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리 방법이라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코비드19로 할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다. 올해는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또한 알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만나려면 시간과 공간과 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셋 다 자연스럽게 만나져야 한다. 한데 가만 생각하니 어른이 되어서 살면서는 정작 별을 보고자 하늘을 쳐다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늘의 달도 별도 바라보기를 안 한 지가 너무 오래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머리 위보다는 눈 아래 것들에만 더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는 얘기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조차 갖지 못한 우리네의 삶이었던 것이다. 하늘의 별 달 구름 그리고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이뤄가던 삶에서 언제부턴가 우린 머리 위의 공간이나 시간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딛고 있는 땅에만 더 신경을 쓰고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저 멀리 보이는 산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아스라이 들리는 소리 같은 것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그저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가까이서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여 아등바등 할 뿐이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귀도 눈도 어두워진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런 것이 어쩌면 맑고 깨끗한 것을 듣고 보지 않으려 하고 탁하고 깨끗지 못한 것을 더 가까이 한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늘이 맑아야 별도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눈과 마음도 맑아야 볼 것을 본다는 얘기가 아닌가.

가끔씩 집에 오는 손녀들을 보면 그들의 웃음이며 눈빛이 얼마나 맑고 깨끗하던가.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 아름다움 사랑스러움을 알면서도 나는 그런 세계에서 멀어져버린 것 같으니 그 또한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아이들이 달려와 가슴에 안기며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하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어진다. 시골에서 만난 어느 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서 은하수가 흐르고 큰별 작은 별들이 깜박이는 걸 보았을 때의 황홀했던 기쁨처럼 어쩌면 아이들이 내겐 그런 별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김 선생이 자랑하는 그 별들도 보러 가야겠는데 금년에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데스밸리는 못 가지만 몽골 밤하늘의 별도 꼭 보고 싶다. 올해 안 되면 내년이라도 제발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가슴 가득 소망해 본다. 사진으로 보았던 그 밤하늘의 별들이 자꾸만 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최원현

『한국수필』로 수필 『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월간 한국수필 발행인 겸 편집인∙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상록수문예대상 수상 외,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어떤 숲의 전설》 등 20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및 고등학교《문학 상》과 여러 교재에 작품이 실려 있다. 청운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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