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정치의 종교화를 경계 한다.

2021-08-07


          이선규논설주간


광복절과 정치의 종교화를 우려한다.

우리는 실로 불가사의한 대상 앞에서 살고 있다. 그 속셈을 알 수 없는 대상을 우리는 아직도 수도 접근하고 있으며 수많은 여 곡절의 사연을 남긴 채

올해도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와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광복 75주년을 맞고 있다.

최근 국가주의를 배격하는 교육 정서와 함께 광복절의 의미도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

우리는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일제의 강권 통치에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 흘려 싸운 독립 운동가들의 처절했던 투쟁과 희생적인 삶을 떠 올리면서 그들의 숭고한 정 신을 되새기게 된다.


오늘 우리는 다시 광복절을 맞으며 이런 조상들의 사회적, 민족적 책임 의식을 느끼게 된 다. 우리는 지금 과거 일제 강점기나 군사 정권으로 부터 출애굽하고 더 나아가 평화 통일의 새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 광야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로 혼란을 격어 왔다.

남북 연락 사무소를 폭파하고 한미 연합 훈련을 생략 아니면 연기해야 한다느니, 매번 그러한 대로 남북 관계를 선거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여러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본래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서 시작한 소중한 민주주의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돈독히 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제도상으로 셰계 여러 나라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근본적인 민주화로는 아직도 이루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표면에 나타나는 정치권의 대립이나 노, 사정 간 갈등도 문제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시각 차이는 도저히 타협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평행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팬데믹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 구조가 대형화 집중화 되면서 성도들의 수평이동이 일어나 대형 교회로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사회 구조가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은 한가하고 백화점이나 대형 기관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더욱 쏠림 현상이 진행 되어 갈 것이고 농촌 교회와 도시 개척 교회들의 존페 위기에 처해가고 실정이다.

 

이러한 병리 현상을 염리에 두고 교회 안에서의 상생과 나눔을 생각하게 된다.

타의 입장을 존중해 주고 다름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보여 주는 것이고 정권욕과 파당 정치에 상처임은 국민에게 소망과 위안을 주는 것이야 말로 광복의 정신이요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적 교훈이라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해결하고 가야 할 과제이다. 주의와, 주장 사상 등이 그 자체로서는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그 사회는 발전해 가는 것이다.

 

자유 민주 사회가 좋다는 것이 바로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잇다는 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사상과 주장을 자유의 범주 안에 상대화 시키지 않고 그것을 남에게 까지 강요하려는데 있다. 이데올로기가 절대화해서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해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고 물리적으로 해결 하려 해서는 폭력으로 규정하여 엄단해야 한다.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에게 까지 자유 행위를 허락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산주의가 기독교의 적이요 자유사회의 적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 안에는 자기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제거 대상으로 간주하는 잘못된 풍조가 멈추어 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그림의 떡에 불과 할 뿐이다.

이데올로기의 광신자는 언제나 파괴적인 역할만 한다.

정치는 절대로 종교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까닥에 종교인의 정치참여는 늘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 하루 빨리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민족의 평화 통일의 그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 하지 않는 평화 통일을 위해 이제 소 소소한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