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있는 자들

2021-11-03

           이선규논설주간

                 

     진정한 복 있는 자들


요즘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의 정치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과연 분열과 아픔의 상처를 치유 할 만 한 자격이 있는가? 의구심이 들고 그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 기독교 대표 기관의 총무가 기도한 것을 놓고 왈 가, 왈 부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본인도 이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 끝에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일이라고 하는데 성서가 전하는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탈무드에 나오는 교훈 한 토막을 기억한다. 추수 때가 되어 일에 분주하던 한 농 부가 아들에게 “옆집에 가서 낫 한 주루만 빌려 오라”고 보냈다.

잠시 후에 돌아온 아들의 말 옆집에서 빌려주지 않는다면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농부는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으나 불편을 참고 일을 마친다. 며칠 후 이번에는 반대로 옆 집에서 낫을 빌리러 왔다.

농부는 말없이 낫을 빌려 주었다.

이를 지켜 본 이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분은 빌려 주지 않았는데 왜 낫을 빌려 주었느 냐고 원망스레 물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평범한 것 같은데 큰 울림으로 다가 왔다.

그가 빌려주지 않았다고 나도 빌려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수 (復讐) 이다. 그리고 그는 빌려 주지 않았으나 나는 빌려 준다는 말로 책망하며 빌려 준다면 그것은 증오(憎惡)라고 했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적대와 증오의 소리만 요란하다.

“pace” 평화 서로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평화의 인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미사여구 (美辭麗句)이다. 현재 이 땅에 참 평화가 깃들이고 있나?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노동의 권리를 돌려 달라고 아우성이고 사회나 가진 자 들은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지금 세계는 평화를 말하고 화해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가치는 현대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서 멀어 지고 있다.

약소민족을 착취하는 국가나 개인도, 36년 동안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탄압 하고 순박한 한국의 처녀들을 제물로 삼았고 지금도 떵떵 거리는 옆 나라도 그리고 교묘하게 사람을 권력 으로 억압 하거나 죽이면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자들 권력을 장악한 자들도 노동자와 농민에게서 착취한 자들도 헛된 웃음과 평화를 말하며 화해의 제안을 해오고 있는 판국이니 말이다.

그냥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좋게, 좋게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해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

“너희는 형제가 네게 대해 원망할만한 어떤 것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그 형제에게 화해하도록 하여라(마2:24)화해는 적당히 잊어버리거나 타협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방 받을만한 사람이 먼저 자기의 잘못을 저지른 그 사람에게 찾아가 회개하며 그 빼앗은 것을 되돌려 주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참된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되돌리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 5:26) 이와 같이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다. 솔 지기 세상에는 웃기는 복이 많기도 하다. 돈만 조금 많아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출세해도 복 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인지 교회에서도 식사한 끼 잘 대접해도 ‘천배’ ‘만 배’로 갚아 주시라고 축복 기도가 흥행하나 보다. 그러나 성서는 그 자녀가 잘 되는 조건을 주님이 제시해 주셨다.

그것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다.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현대인들은 이런 것을 복 이라 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현실 적으로 소유가 많고 소유한 것이 있어야 “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그 차원이 다르다.

이와 같이 옛날이나 현재나 사람들은 평화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평화가 없는 곳은 전쟁이고 미움이며 지옥과 같다.

평화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며 복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도 그 말씀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동의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화를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재설명을 하셨다.

그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평화를 만들고 화해를 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 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런 사람이 구체적으로 할 것이 원수를 사랑 하라 고 하신 것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너에게 못된 짓을 하고 너에게 해를 끼치고 너를 괴롭히 는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시면서 하신 말씀이 너희를 박해하는 자 즉 너희를 공격 하 고 폭력을 가하고 비 인격 적으로 대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대항하지도 말고 그런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요즘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적대시 하고 증오의 소리가 난무한다. 자기만 옳다고 진정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는 소리가 많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자 손길을 내미는 모습도 보기가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