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시기에 새해를 맞으며.

이선규 논설 주간
전에도 여러 원인모를 사스, 메로스 등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때가 있었지만 현재 코 로나19의 사태로 겪는 혼란과 고충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 상황이라 진단해 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여러 교회 기관들의 기도회마저도 5인 집합금지명령으로 줄줄이 취소되고 교계 언론사들도 기사 거리가 사라져 일감을 놓은 상태이다.
“안녕 하십니까”? 라는 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 하십니까? 라는 우리 전통의 인사말이다. 평소에 정답게 주고받던 인사인데도 인사를 나누려고 하니 한편 서글픈 마음이 서려온다.
그것은 코로나로19로 인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가 난리이고 백신이 희망이라고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접종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되어지고 있다고 하니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회의가 스쳐 가는데.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 중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람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 하여라”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다가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 앞에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 서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번 사태의 한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간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성경 창세기 최초 인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태 4장에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신 내용을 볼 수 있다.
유혹자는 세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 유혹자는 우리 마음 안까지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기도 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유혹자는 서투른 방법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우리가 듣기 좋은 소리로 유혹한다.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나님처럼 된다.” (창3:4-5)얼마나 달한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인가? 그 유혹에 하와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고 한다.
유혹자는 현재 코로나처럼 왕관 모양을 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기독교 역사 2000여년 동안 수많은 유혹과 시련과 이단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럴 듯한 말들로 우리를 유혹해 왔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자들을 수없이 보아왔고 특히 오늘의 과학문명의 속도는 가속화 되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과학 문명이 우리의 희망이고 대안이며 하나님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과학 문명이 역사를 주관 하는 듯이 보여도 우리의 유혹자 앞에 아니요. 라고 단호한 음성은 작기만 하다.
작금의 상황은 코로나가 아니라도 교회의 신뢰는 추락이 되어있고 사회로 부터 따 금한 매를 맞고 있다.
여기에 엎치고 덮친 격으로 코로나 정국에 비대면 예배라는 상황이 전개됨으로 교회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듯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길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 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주가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진주요. 황금이 녹이 슬어 빛을 잃어도 역시 황금은 황금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당하고 매를 맞아도 진리의 가치는 훼손 되지 않는다.
잠시 세상의 가치에 눌려 있을 뿐이다.
비록 허물과 인간의 욕망과 탐욕의 진흙으로 덧 씌워 있더라도 진흙을 걷어내고 내고 진주를 찾아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빛을 잃어 버린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원년 되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역사 앞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한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자기 욕망을 절제 할 줄 아는 경건한 삶을 회복해 가기를 다짐 하 며 새 해 기 지 개를 펴 본다.
딤전2;2-4절에 단정한 중 고요하라고 하신다.
아리스토 톨의 말에 의하면 “단정”을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는 생활이라고 했다.
교회의 신뢰는 추락해도 비굴 하지는 말자. 그동안 성장을 가능케 하셨던 은혜를 잃어 버 린채 오만하고 자만했던 과거는 씻어 버리자.
“도가니 극복해 나가면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새해 결심과 다짐을 다져본다.
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고 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연단하심으로 장차 왕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튼튼하고 큰 그릇으로 만 들어 가셨다.
한국 교회에 대 내외적으로 불어 닥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나가면 한국 교회는 희 망의 등대로 떠오르리라 기대하며 새해 다짐과 결심을 다져본다.
비상의 시기에 새해를 맞으며.
이선규 논설 주간
전에도 여러 원인모를 사스, 메로스 등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때가 있었지만 현재 코 로나19의 사태로 겪는 혼란과 고충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 상황이라 진단해 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여러 교회 기관들의 기도회마저도 5인 집합금지명령으로 줄줄이 취소되고 교계 언론사들도 기사 거리가 사라져 일감을 놓은 상태이다.
“안녕 하십니까”? 라는 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 하십니까? 라는 우리 전통의 인사말이다. 평소에 정답게 주고받던 인사인데도 인사를 나누려고 하니 한편 서글픈 마음이 서려온다.
그것은 코로나로19로 인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가 난리이고 백신이 희망이라고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접종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되어지고 있다고 하니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회의가 스쳐 가는데.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 중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람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 하여라”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다가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 앞에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 서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번 사태의 한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간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성경 창세기 최초 인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태 4장에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신 내용을 볼 수 있다.
유혹자는 세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 유혹자는 우리 마음 안까지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기도 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유혹자는 서투른 방법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우리가 듣기 좋은 소리로 유혹한다.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나님처럼 된다.” (창3:4-5)얼마나 달한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인가? 그 유혹에 하와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고 한다.
유혹자는 현재 코로나처럼 왕관 모양을 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기독교 역사 2000여년 동안 수많은 유혹과 시련과 이단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럴 듯한 말들로 우리를 유혹해 왔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자들을 수없이 보아왔고 특히 오늘의 과학문명의 속도는 가속화 되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과학 문명이 우리의 희망이고 대안이며 하나님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과학 문명이 역사를 주관 하는 듯이 보여도 우리의 유혹자 앞에 아니요. 라고 단호한 음성은 작기만 하다.
작금의 상황은 코로나가 아니라도 교회의 신뢰는 추락이 되어있고 사회로 부터 따 금한 매를 맞고 있다.
여기에 엎치고 덮친 격으로 코로나 정국에 비대면 예배라는 상황이 전개됨으로 교회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듯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길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 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주가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진주요. 황금이 녹이 슬어 빛을 잃어도 역시 황금은 황금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당하고 매를 맞아도 진리의 가치는 훼손 되지 않는다.
잠시 세상의 가치에 눌려 있을 뿐이다.
비록 허물과 인간의 욕망과 탐욕의 진흙으로 덧 씌워 있더라도 진흙을 걷어내고 내고 진주를 찾아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빛을 잃어 버린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원년 되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역사 앞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한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자기 욕망을 절제 할 줄 아는 경건한 삶을 회복해 가기를 다짐 하 며 새 해 기 지 개를 펴 본다.
딤전2;2-4절에 단정한 중 고요하라고 하신다.
아리스토 톨의 말에 의하면 “단정”을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는 생활이라고 했다.
교회의 신뢰는 추락해도 비굴 하지는 말자. 그동안 성장을 가능케 하셨던 은혜를 잃어 버 린채 오만하고 자만했던 과거는 씻어 버리자.
“도가니 극복해 나가면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새해 결심과 다짐을 다져본다.
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고 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연단하심으로 장차 왕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튼튼하고 큰 그릇으로 만 들어 가셨다.
한국 교회에 대 내외적으로 불어 닥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나가면 한국 교회는 희 망의 등대로 떠오르리라 기대하며 새해 다짐과 결심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