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가 무너지면

터가 무너지면 

    이선규 목사 (본지 논설 주간)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흔들리면 순간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제 세상의 모든 것 들이 흔들리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

이미 땅이 흔들리고 공중에서 바다에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코로나 지원금으로 인한 정부 부채가 2-30 후에 후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윤리 도덕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 내일의 일만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어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교회마저 흔들리고 있다

개척 교회가 예전 같지 않다고 아우성이고 중형 교회도 영향이 있고 코로나로 인하여 

비 대면 예배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을 회복해 가야 할지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면 왜 “만세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가”흔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기초가 바르지 않아서 그렇다.

찬송가 가사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 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라는 가사처럼 

올바른 기초 즉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감히 누구인들 흔들 자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흔들림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초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뿌리가 얕은데 원인이 있지 않은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 소설을 읽다 보면 다음과 문장이 흔히 나온다.

'말발굽에 밝히는 자 부지기 수 더라.

“전쟁을 하다 보면 한쪽은 승승장구요 또한 쪽은

그 쫒기는 상황에서도 일패도지(日敗途地)라 표현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름 없는 무명초로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회고해 볼 여유조차 없이 

먼지 속에 휩싸인 채사라지는 모습이 서글픈 심정이었다.


승 승 장구하던 군사들도 어느 때 인가는 패잔병의 신세로 전락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한 시대를 구가하던 영웅호걸들도 한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별 수 없이 

그 모든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목, 불 인견이었다.


느헤미아 5:5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제 아들 딸 들을 종으로 팔아먹는 신세다.

딸들이 짓밟히는데도 우리는 어떻게 손쓸 힘이 없구나? 

귀향 이후의 이스라엘의 재건과정에서 겪었던 사회 불의에 대해 부르짖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보자. 정치인들을 책하기 전에 각자 있던 자들이 그리고 정치에 몸 담고 있는 선량들은 

그런 불의에 불감증 증세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일반 서민층들은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는 액수의 돈들로 불의를 자행하면서 말로는 정의를 외치고 있으니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


진리의 터전 위에 세워진 교회조차 정의와 하나님의 의를 외치는 소리는 모기소리 만큼이나 듣기가 어려운 시대라면 과언이랄까?


불의에 대해 외치는 자 보기 힘들고 오히려 그들의 불의한 헌금의 출처는 살펴보지도 않은 채 축복의 음성은 크게 들리는 듯하다.

터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독일의 본 훼퍼는 불의와 비 진리에 맞서 싸우다 기득권자들의 음모에 죽어가면서도 그 진리를 사수하였는데 

오늘에 그러한 예언자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한국의 본 훼퍼를 자처하면서도 그의 정신과 삶과는 정 반대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유대인 600 만명을 학살한 히틀러 정권에 맞서 싸운 진리의 투사였다.

어찌 이 상황을 그에게 비교 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부정과 부패에 과감히 대처하며 날카로운 도덕적 판단력을 가져야 함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태도이며 절대다수의 보통사람들에 대한 경외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것은 왜곡된 역사의 흔적을 후손에 물려주지 않아야 할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의무 이다.

시편 11:3절에서도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꼬 하였다”.

터가 무너지면 자칭 의인들이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야 할 일도 없는 천박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동성애 문제, 젊은이들의 탈선.


가정의 해체로 인한 신음 소리가 심상찮다.

터가 무너지기 전에 교회의 기초를 다시 돌아보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무너지기 전에 손 볼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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